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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정책 검증] 보건의료

중앙일보

입력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보건의료분야는 핵심 정책사안 중 하나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과 지난해 이후 건보 재정 파탄의 혼란을 유권자들이 피부로 경험했고, 이해가 얽힌 집단끼리의 대립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관련 단체들은 각 후보들의 정책방향에 촉각을 세운 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 채택되도록 공공연한 압박과 물밑 설득을 병행하고 있다.

보건의료분야의 3대 쟁점은 ▶건강보험 통합▶의약분업의 지속▶민간 의료보험(사보험)의 도입 여부다.

사보험 도입 건을 제외하고는 후보 간 입장이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첨예하게 갈라서 있는 이해당사자 집단의 표를 의식해선지 대체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원론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소위 '눈치보기'행태가 엿보였다. 다만 權후보는 곳곳에서 전향적인 면모를 풍겼다.

크게 보아 네 후보 중 둘씩 편이 갈렸다. 한쪽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 다른 편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다.

李.鄭후보는 세 쟁점과 관련해 현재 추진 중인 제도를 개선하자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 盧.權후보는 현 정부의 정책을 유지하자는 쪽이다.

◇건강보험 재정 통합

직장 건강보험과 지역 건강보험의 돈주머니를 하나로 합치는, 20년 이상 논란이 거듭돼온 문제다.

조직은 이미 합쳤지만 재정 통합은 내년 6월까지로 미뤄져 있다. 당초 지난 1월 통합할 예정이었으나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에 의해 1년반이 늦춰졌다.

이회창 후보는 1997년 대선 때 '건보의 조직과 재정의 완전통합'을 공약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정에 대해서는 분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근로자는 소득이 모두 드러나 보험료를 많이 내는데, 소득이 같거나 더 많은 자영업자는 적게 신고해 보험료를 적게 부담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건보재정 분리론을 펴면서도 건보공단으로 합쳐진 지역.직장 건보조직을 다시 쪼갤 것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정몽준 후보는 유보적이었다. "통합의 장.단점을 재평가한 뒤에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입장만 피력했다.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후보답게 당론인 통합론을 폈다. 하지만 재정 통합의 전제조건인 보험료 단일 부과체계 마련이나 소득파악률 제고 방안 등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권영길 후보는 "통합은 하되 자영업자들의 소득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관련 기관(가칭 자영자 소득 인프라 구축위원회)을 구성하자"는 등 비교적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보험료 부과 체계의 단일화 문제는 재정을 통합한 뒤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의약분업 지속

권영길 후보를 제외한 세 후보는 "의약분업이 불편을 야기했고 건보재정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의약분업을 없던 일로 하자는 주장은 없었다. 결국 '계속 시행하되 보완하자'는 것인데 방법과 범위에는 각기 차이가 났다.

이회창 후보는 "의약분업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개선.보완하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 때 李후보는 의약분업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0년 파동 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전면 재검토"로 입장을 바꿨다가 이번에는 보완하는 쪽으로 수위를 낮춘 것이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보완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정몽준 후보는 "국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은 태도다.

노무현 후보는 일단 정부의 홍보용 통계를 인용해 "분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래서 현재 정책의 틀을 유지하되 성분명 처방(특정 제품을 적시하지 않고 약의 성분을 처방해 같은 효능의 제품을 약국에서 사도록 하는 것)을 확대하고 대체조제(처방된 약과 같은 효능의 다른 약으로 대체해 조제하는 것)를 활성화한다는 개선책을 제시했다. 이 두 가지는 그동안 의.약계에서 논란이 돼온 것들이다.

권영길 후보는 "의약분업을 원칙대로 더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수가가 지나치게 인상돼 건보재정 파탄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했다.

◇민간의료보험 도입

李.盧.鄭 후보 모두 현행 건강보험(공보험)이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민간보험(사보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법론에는 차이가 났다. 李후보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는 민간보험 도입을 공약했다.

盧후보는 "현행 건강보험이 안정된 뒤 점진적으로 사보험을 도입하되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혜택이 늘어나는 등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鄭후보도 건강보험이 위축되면 안된다는 조건을 붙여 같은 입장을 보였다. 유독 權후보는 도입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자문단=박재용 경북대 의대교수, 이선희 이화여대 의대교수, 조재국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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