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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잘못 아니다" 판사는 서울시 성폭력 피해자에 위로 건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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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가 지난 10월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동료 직원 성폭행 혐의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가 지난 10월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동료 직원 성폭행 혐의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4‧15 총선 전날 동료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서울시 공무원의 재판에 피해자가 출석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와 동일 인물이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조성필 부장판사)에서는 술에 취한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6개월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 정모씨의 1심 재판이 열렸다. 이날 피해자 A씨는 재판에 나와 자신이 겪은 피해 상황을 직접 진술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재판의 쟁점은 A씨가 현재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에 맞춰졌다. 정씨 측은 A씨의 신체 일부를 만진 혐의 등은 인정하지만 성폭행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또 A씨가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 자신의 행위가 아닌 제3의 요인에 의해 발생했을 수 있다며 인과 관계를 다투고 있다.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A씨는 자신이 기억하는 범위에서 사건과 관련한 부분을 충분히 잘 증언했다”고 전했다. 또 해당 사건이 자신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이 때문에 PTSD를 앓게 됐는지 설명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씨 측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질문을 하려고 하자 질문 취지를 먼저 물어보고, 재판의 쟁점과 관련 없는 부분에 관해서는 적절치 않다고 막았다. 또 A씨에게 충분히 말할 기회를 부여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A씨는 법정에서 “정씨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는 게 제가 다시 살아갈 기회가 될 것이며 진정으로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재판장은 “3년 동안 성폭력 전담 재판부에서 일하면서 많은 피해자를 보았다”며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했다. A씨도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준 재판부에 고마움을 표했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성폭력 전담 재판부의 태도가 앞으로 피해자의 치유와 아직 주변에 말 못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씨는 지난 4월 14일 동료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진 후 A씨를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다음날 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재판은 다음달 10일 종결될 예정이며 내년 1월쯤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A씨는 지난 7월 8일 박원순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박 전 시장은 이튿날 자신의 피소 사실을 인지한 뒤 잠적했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지난 10일 성추행 피고소 사실 유출 경위를 수사하기 위해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를 포렌식했다. 반면 박 전 시장 사망 사건 수사는 제자리 걸음이다. 유족 측은 경찰의 포렌식 절차를 중단해 달라는 준항고를 제기했고, 법원의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권위는 피해자와 서울시 공무원 등 주요 참고인을 불러 조사의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다. 다음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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