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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사도 "성형외과 개업"…타과 의사들 대거 진출

중앙일보

입력

마취과 전문의인 許모씨는 얼마 전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경기도에서 눈.코 미용 수술을 주로 하는 의원을 개업했다.

그는 "마취과 프리랜서로 일하며 여러 병원을 다녀본 결과 미용 수술 분야가 수익성과 안정성에서 가장 전망이 밝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를 진료하던 일반의 개업의 崔모씨도 지난해 진료과목을 성형외과로 바꾸고 쌍꺼풀 수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과거 성형외과 전문의들의 영역으로 인식됐던 미용 수술 분야에 몇년 전부터 안과.이비인후과 등 다른 과(科) 전문의들은 물론이고 일반의까지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 의하면 의대 6년을 졸업하고 의사자격증을 취득하면 진료과목을 어느 것으로 정하든 개업에 제한이 없다.

◇성형외과 개업 열풍

대한의사협회는 현재 서울에만 미용 수술 병.의원이 무려 2천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원은 10% 정도인 2백여개뿐이고 나머지는 비(非)성형외과 전문의나 일반의들이 개업한 것으로 의협측은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다른 과 전문의나 일반의들은 지난해 12월 대한미용외과학회라는 모임까지 결성해 정보 교류 등을 하고 있다.

이 학회에는 안과.피부과.이비인후과.흉부외과.가정의학과.마취과 등 10여개 과 전문의들이 포함돼 있다. 이 학회의 한성익 공보이사는 "현재 1천2백여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회원 수가 3개월 전에 비해 50% 늘었다"고 말했다.

미용 수술 분야에 의사들이 몰리는 현상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미용 수술엔 대부분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익성이 좋은 데다 날이 갈수록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연간 미용 수술 시장의 규모가 2천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와 갈등

다른 과 전문의들이 미용 수술 영역에 대거 진출하면서 성형외과 전문의들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한미용외과학회는 지난 8월 성형외과 전문의 모임인 대한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 경고 처분을 받아냈다.

비성형외과 전문의들의 시장 잠식에 위기감을 느낀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측이 여성지 등에 '돌팔이나 다른 과 의사에게 성형수술을 맡기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이은정 이사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의사들이 미용 수술로 몰리면서 의료사고가 늘 가능성이 커지고 과대광고가 판치는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미용외과학회측은 "미국.일본 등에선 미용외과학회가 일반화돼 있으며 미용 수술이 성형외과 전문의들의 독점 영역이라는 건 말도 안된다. 각 분야의 전문의들이 성형외과 의사보다 더 전문적인 미용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손명세 교수는 "건강보험 환자만을 진료해서는 병원 수지를 맞추지 못하는 상당수 의사가 돈 되는 분야로 몰리는 것"이라며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일반 질환을 담당할 의사가 사라져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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