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동호의 시시각각

보수가 정책 폭주 탓하기 전에 할 일

중앙일보

입력 2020.11.1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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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국민의힘이 ‘국민의 짐’이라는 조롱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화부터 낼 일이 아니다. 오히려 겸허하게 들어야 한다. 보수 정당이 국민에게 필요한 정치를 하고 있는지, 국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분위기를 진작 알아본 것은 지난 총선 때였다.

보수는 시장경제의 그늘 살피고
진보는 결과의 평등 주장 멈춰야
역지사지해야 공멸 피할 수 있어

당시 새누리당은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겠다면서 민부론(民富論)을 내놓았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착안한 민부론은 국민을 부자로 만들자는 취지를 담았다. 그 뜻은 매우 좋았다. 현 정권이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격의 소득주도 성장을 강행하자 경제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던 시점이었다. 세금 핵폭탄을 앞세운 부동산 정책과 성급한 탈원전도 막대한 부작용을 낳고 있던 터였다.

이 마당에 보수 야당이 민부론을 들고 나온 것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시장원리를 뭉개고 이념을 앞세운 정책 폭주에 맞서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부론은 지금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름만 그럴싸하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은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촉진해 성장률을 높이고, 국가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자는 식이다. 원론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공자 말씀에 불과하다. 민부론에는 국민 모두 함께 잘살자는 방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바늘구멍처럼 취업문이 좁아지고, 고령화 여파로 노후가 걱정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경쟁 만능과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선거는 1인 1표 아닌가. 그것이 민주주의다. 보통 사람들은 정치인이 아무리 공자 말씀을 해도 당장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공감해 주지 않는다. 이에 비해 ‘진보 진영’은 공감의 정치를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만 위선 따위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제 자식은 입시와 병역에서 온갖 특혜를 받게 하면서도 정의와 공정을 말한다. 절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긴급 재난지원금을 퍼주고, 추경을 거듭해 현금을 살포한다.

그래도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이들 진보 진영의 손을 들어줬다. 평범한 사람들은 현 정부의 정책이 국민을 위해 꼭 옳지는 않아도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는 얘기다. 최근 나온 『평등으로 가는 제3의 길』(이경태)을 펼쳐보면서 이런 생각에 더 확신을 갖게 됐다. 개발연대에 서울대를 나오고 공무원을 거쳐 국책 경제연구원장에 대사까지 지내며 평생 엘리트로 살아 온 저자가 평등을 거론한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그는 사석에서 자전적 경제평론집을 집필한 배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도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 해외에 나가면 현지 호텔에는 여유 넘치는 한국인들뿐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경제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난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게 현실일 수 있다. (중략) 그렇다고 복지 만능으로 가면 사회주의가 된다. 사회주의는 불평등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특권층을 빼면 국민 모두 하향 평준화로 가게 된다.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보수 우파는 복지를 수용하고, 좌파는 시장경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크게 공감한다. 민부론처럼 공허한 주장은 대안이 아니고, ‘탈원전’ ‘신공항 뒤집기’ ‘소주성’ 같은 정책 폭주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이 난제를 해결하려면 보수부터 달라져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감하게 시장경제의 그늘을 살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 대선도 민주당 내 급진적 좌파는 물론 공화당의 보수주의와도 선을 그었다.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진보 진영은 위선의 가면부터 벗고 ‘결과의 평등’ 같은 무책임한 정책을 당장 멈추길 바란다.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자. 그래야 공멸을 피해 함께 갈 수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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