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영준의 시시각각

평창의 추억과 도쿄 빅픽처

중앙일보

입력 2020.11.1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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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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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주제 연설을 하러 연단에 오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놀라게 한 뜻밖의 청중이 있었다. 모범 수강생처럼 맨 앞줄에 앉아 연설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였다. 위안부 문제 해법을 촉구하며 정상회담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던 박근혜에 대한 아베 나름의 성의 표시였다. 박근혜와 아베의 첫 회담은 그로부터 두 달 뒤 헤이그 핵안보 정상회의장에서 중재자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함께하는 3자 회담 형식을 빌려 이뤄졌다.

도쿄 올림픽에 김정은 부르는 꿈
첫 관문은 꽉 막힌 한·일 관계 개선
현실적 대안 결단해야 해결된다

최근의 한·일 간 상황은 그때와 역전된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경로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과 여당 중진인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잇따라 스가를 예방했고 이낙연 대표 등 여당 수뇌부가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급기야 문 대통령이 13개국 정상 간 화상 회의에서 “특히 스가 총리님 반갑습니다”며 인사를 건넬 정도가 됐다. 대면 회의였다면 더 각별한 방식으로 다가섰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가 총리는 여전히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방한에 소극적이라고 한다. 이유야 어찌 됐건 정상 간 만남 자체를 회피하는 듯한 자세는 적이 실망스럽다.

일본을 향한 ‘러브콜’ 공세는 지난해 대통령 측근들이 죽창가를 외치고 토착왜구 타령을 하던 반일 캠페인과는 극명히 대비되는 태도 변화다. 여러 전언들을 종합하면 그 변화의 배경에는 도쿄 빅픽처(Bic Picture)가 있다. 내년 7월 도쿄 올림픽에 김정은을 불러 북·미 담판은 물론 북·일 현안을 푸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도쿄 반년 뒤에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열린다. ‘평창의 추억’을 재현할 수 있는 장이 잇따라 서는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싱가포르에 이어 올림픽 무대에 나오는 것으로 국제무대 데뷔가 완성되고, 납치 문제 논의를 위해 “조건 없이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용의를 밝힌 스가도 솔깃해질 수 있는 구상이다.

하지만 난관은 평창과 비교할 바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트럼프 시절의 ‘톱다운’ 북·미 회담을 성과 없는 보여주기 이벤트로 평가절하한다. 김정은 역시 빈손으로 돌아섰던 하노이의 트라우마가 도쿄행 발걸음을 계속 붙잡을 것이다.

일본의 협력은 또 다른 난관이다. 김정은 방일에 대한 일본 여론의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도 간단치 않지만 그보다 먼저 맞닥뜨릴 1차 관문은 한·일 관계다. 일본은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해법을 한국이 내놔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한 참석자의 전언에 따르면 한일의원연맹 방문단을 접견한 스가 총리와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 누카가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국가 간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이구동성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은 ‘문재인-스가 선언’에 대해 “(징용 해결 없으면)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고 사설에 썼고, 상대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배려한다는 아사히신문 역시 비슷한 논조다. 보다 더 빨리 강제징용 현안을 해결하지 못한 걸 문 대통령은 아쉬워할지 모른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라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했다. 국제정치나 외교에서도 통할 말이다. 하지만 외교는 냉엄한 현실의 게임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 냉철한 현실 인식을 동반하지 않는 상상은 언제든 공상 내지 몽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평창 어게인’의 꿈은 공교롭게도 그 공간이 도쿄가 됐다. 첫 관문은 강제징용 현안을 돌파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일 양국이 서로 조금씩 물러서지 않으면 절대 풀리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양국 지도자들은 ‘불가능한 최선’ 대신 ‘가능한 차선’을 선택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차선을 받아들이고 나면 해법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 순간 차선은 양측 모두에게 최선이 된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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