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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람사전

엄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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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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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 아빠 사이에 놓인 사람. 아빠가 자식의 허물을 볼 수 없도록 자신의 몸으로 자식을 반쯤 가리고 있는 사람. 늘 앞뒤 다 살피느라 외로울 틈이 없는 사람.

지난 주 ‘아빠’에 이어 오늘은 ‘엄마’다. ‘아빠’를 읽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분명 이렇게 혼잣말을 했을 테니까. 엄마도 외로운데. 아빠만큼 외로운데. 맞다. 아빠를 외로운 직업이라 규정했지만 엄마라는 직업은 외로울 틈도 없다.

얼마쯤 자식의 허물을 가려야 하는지 날마다 고민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덜 가리면 아빠가 속상해하고, 너무 많이 가리면 자식이 우울해 한다. 때론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줘야 하는데 그때가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위치 선정 하나만으로도 외로울 틈이 없다.

사람사전 11/18

사람사전 11/18

엄마의 외로움은 내 앞에 자식이 보이지 않을 때 찾아온다. 어느 날 자식은 다 컸다는 이유로, 독립이라는 거창한 단어 하나 던지고 엄마를 떠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식에게나 독립이지 엄마에겐 분리다. 떠나는 게 아니라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팔 하나가 뚝 잘려나가는 것 같은. 엄마는 이제 아빠의 시선을 가릴 필요가 없다. 비로소 외로울 틈이 생긴다. 외롭다.

물론 안다. 자식은 엄마를 떠난다. 각오한 일이다. 그런데, 그 순간, 뒤돌아봤는데, 아빠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그 허전함은 차마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자식이 엄마 시야에서 사라지는 날 아빠가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이제 돌아서세요. 나를 보세요. 나는 오늘도 당신 앞에 있어요. 당신 곁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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