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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워리어’ 임성재, 마스터스 준우승…아시아인 최고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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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임성재가 16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 17번 홀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임성재가 16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 17번 홀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임성재(22)가 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더스틴 존슨(미국)에 이어 공동 2위에 올랐다. 존슨이 20언더파, 임성재와 캐머런 스미스(호주)가 15언더파를 쳤다.

스미스와 15언더파 공동 2위 #마스터스 사상 8번째 좋은 기록 #코피 틀어막고 연습하던 악바리 #대가 스윙 보고 모방 ‘사진 기억술’ #처음 본 코스도 손금 보듯 읽어내 #작년 PGA 신인왕, 올 페덱스 5위

존슨은 세계랭킹 1위다. 최근 7개 대회에서 존슨은 우승 세 번, 준우승 세 번, 6위를 한 번 했다.

마스터스는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한 곳에서만 열린다. 코스를 잘 아는 베테랑이 유리하고 임성재 같은 첫 참가자는 그만큼 불리하다. 존슨은 마스터스에 열 번째 참가했다. 임성재는 오거스타에 처음 왔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4타 앞선 채 최종 라운드에 돌입한 존슨에게 임성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임지택씨는 “어릴 때부터 경기에서 마음에 드는 샷이 안 나오면 흐르는 코피를 틀어막고 연습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울거나 화를 내곤 했다. 기를 꺾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성재는 2, 3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 한 타 차까지 따라붙었다. 그러나 6번 홀에서 임성재가 보기를 하고 존슨이 버디를 하면서 차이가 벌어졌다.

골리앗과 다윗, 더스틴 존슨과 임성재가 결승 경기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임성재는 ’내 경기가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골리앗과 다윗, 더스틴 존슨과 임성재가 결승 경기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임성재는 ’내 경기가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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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은 놓쳤지만 임성재의 15언더파는 역대 84차례 마스터스 사상 8번째로 좋은 기록이다. 15언더파라면 76개 대회에서 우승, 1개 대회에선 연장전에 갈 기록이다. 첫 참가자의 성적으로는 최고이며 아시아 선수의 마스터스 최저타 기록이기도 하다. 임성재는 경기 후 “내 경기가 자랑스러웠다. 분명 기억에 남을 마스터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재는 6세 때 골프를 시작했으나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레드 티에서 90타를 깨지 못했다. 아버지 임씨는 “프로 선수가 되기엔 재능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임성재의 몸속에는 수퍼맨이 살고 있었다.

시험 삼아 나간 대회에서 77타를 쳤다. 평범한 선수들은 중요한 대회에 나가면 긴장해 평소 실력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임성재는 큰 무대에 서자 80대 타수를 바로 뛰어넘었다.

주니어 시절 임성재는 잘했다. 하지만 22세에 마스터스 2등을 하리라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최고 무대인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일본 투어를 거치는 것이 유리하다는 얘기를 듣고 눈빛이 달라졌다. 고교 2학년 때 프로로 전향해 한국과 일본 투어 출전권을 동시에 땄다.

일본에서 순탄하지는 않았다. 2016년 적응이 어려워 경기 출전 자격을 잃을 뻔했다. 가족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해외로 왔나 후회도 했다. 임성재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4등을 해 다음 경기에 나갈 자격을 얻었다. 그다음 경기에선 10위, 그다음 경기에서 11등을 해서 출전권을 땄다. 어머니 김미씨는 “가족이 함께 모여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기억했다.

2017년 말엔 미국 2부 투어 1차 퀄리파잉 스쿨에 출전했다. 임지택씨는 “5라운드까지 하위권이어서 ‘올해는 포기다’ 생각했다”고 기억했다. 아들은 마지막 날 8언더파로 2차 대회 출전권을 땄다. 2차 대회에서도 탈락하는 듯했지만, 마지막 날 또 8언더파를 쳤다. 3차 대회에서는 3라운드에 무려 60타를 쳤다.

이후론 파죽지세. 임성재는 2018년 2부 투어 첫 대회부터 우승했고 상금 1위로 PGA 투어에 올라왔다. 지난해 PGA 투어 신인왕, 올해는 페덱스 랭킹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번 대회 순위가 재미있다. 우승은 랭킹 1위 존슨이고 준우승이 임성재-스미스, 랭킹 3위 저스틴 토머스(미국), 4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순이다.

임성재는 지난 6년간 거의 매년 다른 투어, 다른 코스에서 경기했다. 일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임성재가 어려운 무대서 더 잘하는 비결은 뭘까.

“해리 포터 영화를 한두 번 보고 나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동작을 흉내 냈다. 화면을 보지 않는데도 해리 포터가 방향을 바꿀 때 동시에 바꾸고, 해리 포터가 회전할 때 똑같이 돌았다.” 어머니 김미씨가 전한 아들의 어릴 때 일화다.

그 모방 능력과 리듬감으로 임성재는 일본에서, 또 미국에서 정상급 선수들의 스윙을 보고 따라 한다. 쇼트게임 코치도 없는데 마스터스에서 임성재의 쇼트게임은 최고 수준이었다.

이번 마스터스처럼 처음 나간 코스에서, 마치 베테랑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코스를 파악하고 그린 경사를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 김미씨는 사진 기억 능력 비슷한 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 얘기다. 예를 들면 이랬다.

엄마=“저 차는 어제 본 그 차 같네.”

임성재=“아녜요 엄마. 어제 그 차는 바퀴에 작은 빨간 점이 있었어요.”

임성재는 미국에서 길 위의 전사(Road Warrior)로 불린다. 집을 구하지 않고 호텔에서 생활한다. 지난해 PGA 투어에서 가장 많은 118라운드를 소화했다. 쉴 땐 다른 생각하지 않고 릴랙스하는 낙천적인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저녁에 한식당에서 고기를 먹는 게 그의 일상이다.

임성재는…

●생년월일: 1998년 3월 30일(충북 청주 출생)
●골프 시작: 6세 ●체격: 1m83㎝·90㎏
●프로 입문: 2015년 ●장기: 아이언샷
●출신교: 제주한라초-계광중-천안고-한국체대
●PGA 투어 진출: 2018~19시즌
●주요 성적:
2018~19 PGA 투어 신인왕(아시아 최초)
2019~20 페덱스컵 5위, PGA 투어 혼다 클래식 우승
2020 마스터스 토너먼트 준우승(아시아 최고)

성호준 골프전문 기자, 김지한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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