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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 대통령-바이든 첫 통화, 동맹 복원 전기 삼아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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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첫 전화 통화를 했다. 바이든의 당선 확정 나흘 만에 15분간 이뤄진 통화에서 두 사람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기로 합의했다.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당선 나흘 만에 한·미 동맹 중요성 공감 #대북 인식 괴리 등 이견 해소가 과제

문 대통령은 통화 직후 SNS로 “굳건한 한·미 동맹과 평화·번영의 한반도를 향한 당선인의 굳은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도 통화 도중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린치핀”이라고 두 차례나 지칭하는 한편, 통화에 앞서 첫 외부 행사로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참배했다.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다짐했던 오바마 행정부 시절 수준으로 한·미 동맹의 위상을 격상하고,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하는 한편 북핵, 미·중 갈등 대응에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중이 드러난다.

지난 3년 반 동안 한·미 동맹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일방주의와 문재인 정부의 친중·친북 노선으로 심각한 훼손을 당했다. 따라서 이번 통화를 계기로 양국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동맹 복원에 나서야 한다. 동맹 최대 현안인 방위비 분담금 갈등을 조기에 해소하고, 지난 3년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는 한·미 연합훈련도 재개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도 속히 재건해 사면초가 처지로 전락한 대한민국 외교가 재정비되고 도약할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은 말로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인식의 괴리를 보이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돼 우려스럽다. 바이든은 ‘북핵 해결’을 강조했지만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을 썼다. 북핵 폐기의 전제 조건으로 미국 전략자산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와 같은 말 아니냐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계승을 다짐한 문 대통령의 발언도 바이든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세 번 만났지만 얻어낸 건 아무것도 없다”며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만 빼고)’를 정책 기조로 삼을 뜻을 내비쳐 왔기 때문이다.

외교통인 바이든은 대선 TV토론에서 “김정은이 핵 능력 축소에 동의해야만 만날 수 있다”고 못 박은 바 있다. 따라서 이미 효용이 다한 영변 핵시설을 대북제재와 맞바꾸는 ‘스몰 딜’이나 깜짝쇼식 북·미 정상회담, 북한이 번복하면 그만인 종전선언 같은 이벤트 외교를 바이든에게 간청해 봤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 바이든은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톱다운’ 방식 대신 실무 관료들의 정보와 판단을 근거로 한 ‘보텀업’으로 북한을 다룰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바이든 행정부와 보조를 맞춰 냉정하고 현실에 근거한 대북 정책으로 북핵 폐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할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