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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택배기사 처우 개선, 더 내실 있는 대책 나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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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택배기사 과로 대책을 내놓았다. 택배 노조에 따르면 올 한 해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기사는 15명이다.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대부분 산재보험도 적용받지 못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들의 하루 평균 작업시간은 12.1시간, 하루 작업량은 250건에 달했다. 정부 대책의 골자는 택배기사 과로 예방 제도 개선, 사회안전망 확대, 불공정 관행 근절 등이다. 회사별로 하루 최대 작업시간 기준을 마련하고, 심야 배송 제한과 주5일 근무제 도입 등을 권고하기로 했다. 택배기사 산재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한편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표준계약서도 마련할 방침이다.

대책 대부분 권고 수준 그쳐 실효성 의심 #선심성 예산 줄여 플랫폼 노동자 지원을

이번 대책은 택배기사 과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걸음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대책이 업계에 대한 권고 수준에 머물러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대책이라기보다 장기적인 정책 방향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력 충원과 배송 수수료 인상 같은 난제는 사회적 협의를 이유로 미뤄 버렸다.

작업시간이나 물량 축소는 택배기사의 수입과 직결되는 문제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며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배송 수수료는 지난해 건당 800원 정도로, 2002년 1200원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과로 방지를 위해 일감을 줄이면 수입 감소에 따른 택배기사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 택배 업체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기도 힘들다. 정부가 홈쇼핑 등 대형 화주의 ‘백마진’ 관행을 고쳐 배송 수수료 저하를 막겠다고 했지만 근본적인 개선책이 될 수는 없다.

택배기사 처우 개선은 노동자·업계·정부 한 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저렴한 비용을 내면서 ‘총알’ ‘로켓’ ‘당일’ 등의 초고속 배송을 당연시하던 소비자들의 생각도 바뀔 필요가 있다. 국민의 연대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국민권익위 조사에 따르면 택배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배송 지연이나 택배비 인상에 동의한다는 답이 10명 중 7명 이상이었다. 다음 달 구성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협의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노동 현실 개선을 외치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50주기가 됐다. 그러나 우리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취약계층 노동자의 위기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택배·배달 등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 보호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당·정·청이 필수 노동자 지원을 위해 내년 예산에 1조8000억원을 책정하고 관련 법률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필요하다면 불요불급한 선심성 예산을 줄이고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더 내실 있는 지원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