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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손정의’…1.4조엔 적자, 반년 뒤 1.9조엔 흑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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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손정의

손정의

한때 스스로 “벼랑 끝”이라고 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겸 사장이 기사회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던 충격을 딛고 반등에 성공했다.

소프트뱅크 벼랑 끝 탈출 어떻게 #헤지펀드 엘리엇 창업주의 아들 #“자사주 매입하라” 손 회장에 압력 #손, 알리바바 지분·ARM 등 매각 #현금 쥐고 실적 개선, 주가 2.5배로

손 회장에게 올해 들어 첫 3개월은 매우 힘든 시기였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지난 1~3월 1조4381억엔의 적자를 냈다. 결국 2019회계연도(지난해 4월~지난 3월)의 최종 결산에선 9616억엔의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지난 9일 발표한 2020회계연도 상반기(지난 4~9월) 실적에선 극적인 반전을 보여줬다. 소프트뱅크그룹의 6개월간 순이익은 1조8832억엔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50%가량 순이익이 급증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는 지난 3월을 고비로 바닥을 치고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달 19일에는 7244엔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3월의 연중 최저(2687엔)와 비교하면 170%가량 뛰었다. 다만 12일 도쿄 증시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는 6679엔에 마감했다. 최근 중국 금융당국이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앤트그룹의 증시 상장을 무기한 연기시킨 게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에도 악재가 됐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알리바바 주식을 20조엔 넘게 보유(지난 9월 말 기준)한 최대주주다.

소프트뱅크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건 헤지펀드 엘리어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소프트뱅크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건 헤지펀드 엘리어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손 회장은 경영 전략 변화도 이끌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손 회장이 “인공지능(AI) 관련 ‘유니콘’(시가총액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에 집중했던 투자전략을 수정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대신 “다양한 투자 대상에 자금을 투입하는 종합적인 투자회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손 회장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한마디로 말하면 정보혁명에 투자하는 회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투자하겠지만 중심은 미국과 중국”이라며 “(미국에는) 실리콘밸리가 있어서 어떤 상황이나 금리 수준에서도 미국 AI 기업에 투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의 출렁거림이 심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하루 2조~3조엔이 변동하는 것은 소프크뱅크에겐 ‘뉴노멀’”이라고 설명했다.

손 회장이 알리바바를 비롯해 기존에 투자한 기업의 지분을 매각한 규모는 지난 3월 이후 5조6000억엔에 이른다. 지난 9월에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을 미국 엔비디아에 400억 달러에 매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두둑한 현금을 마련한 뒤 일부는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주고 일부는 공격적인 투자에 활용한다는 게 손 회장의 구상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헤지펀드 운용회사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조언도 작용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 신문은 지난 3월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가 급락하자 손 회장을 포함한 소프트뱅크그룹 경영진이 엘리엇 임원들과 매일 전화회의를 했다고 보도했다. 엘리엇은 지난해 가을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사들여 2대 주주가 됐다.

고든 싱어

고든 싱어

월스트리트저널은 “소프트뱅크그룹에 조언한 엘리엇 임원 중에는 고든 싱어(46)도 있었다”고 전했다. 엘리엇 창업자 폴 싱어의 아들인 그는 런던 사무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싱어의 팀은 손 회장에게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이 최근 사내이사 네 명을 물러나게 한 것도 엘리엇의 요구와 관련 있어 보인다. 이로써 소프트뱅크그룹 이사회(총 9명)에서 사외이사(4명)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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