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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수술 후 다시 복귀한 사격스타 부순희

중앙일보

입력

25m 거리에서 3초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지름 10㎝의 검은 원. 작은 표적이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 쏴 없앨 자신이 있다. 그러나 암세포란 놈은 눈에 보이지 않게 몸 속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말부터 소화가 잘 안되고 몸이 쉬 피곤해 이상하다 싶었다. 그러던 중 올 3월 위 내시경 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4월 수술대에 올랐다.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수술에서 위의 3분의2가 잘려나갔다.

'권총의 여왕' 부순희(34.우리은행)가 돌아왔다. 수술 이후 첫 공식대회 출전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태릉사격장. 육군참모총장기 전국사격대회 여자권총 25m 일반부에 출전한 부순희는 본선 5백70점(6백점 만점)으로 개인전 결선에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네명의 점수를 합산한 단체전에서는 우승했다.

"연습 땐 잘 맞았는데 오늘은 영 안되네요. 체력도 떨어진 것 같고, 감각도 전같지 않고…."

성적이야 아무러면 어떤가,암수술 받고 첫 출전한 사람이.

"오는 10월 다시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지금은 아무 이상 없어요. 약도 안먹어도 되고. 밥 먹는 데도 문제가 없어요. 그렇지만 라면이나 커피는 안된대요, 김치는 괜찮은데…."

부순희는 2000년 10월과 12월 시어머니와 언니 부신희씨를 잃었다. 둘 다 폐암이었다.

"운명을 원망한 적은 없어요. 제 친정 어머니도 6년 전에 위암 수술을 받으셨는데 지금 건강하게 살아계시거든요."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특히 엄마가 경기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틀어놓고 총 쏘는 자세를 잡아보곤 하던 여덟살난 아들 동규를 보면 더욱 그렇다.

"남편이 이번 대회에 나가는 걸 말렸어요. 신경쓰면 몸에 안좋다고. 그래도 나가겠다고 했더니 '점수가 나빠도 웃으면서 하라'고 신신당부해요."

부순희는 1999년 세계 최고수들이 참가하는 월드컵 파이널 25m 권총에서 우승했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에서는 같은 종목 비공인 세계신기록(결선합계 6백96.3)도 세웠다.

지난 10여년간 그녀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권총선수였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은 번번이 그녀를 외면했다.

"사격은 매력있는 스포츠고, 제 생활의 한 부분이에요. 10월에 검사해 '이상무' 판정을 받으면 본격적으로 체력훈련을 해 다시 한번 올림픽에 도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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