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차이나인사이트

시진핑 방한 한다면…‘나비 효과’ 세심하게 분석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시진핑 해외순방에 숨겨진 외교 코드

지난 2013년 3월 모스크바 크레믈린궁 세인트 조지 홀에서 중국 국가주석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마친 시진핑 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후 지금까지 러시아를 8번 방문했다. [AP]

지난 2013년 3월 모스크바 크레믈린궁 세인트 조지 홀에서 중국 국가주석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마친 시진핑 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후 지금까지 러시아를 8번 방문했다. [AP]

“시진핑(習近平·67)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 계획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다고 싱하이밍(邢海明) 중국 대사가 말했다.”

시진핑, 집권 8년간 69개 국가 방문 #문 대통령 답방 요청엔 3년째 관망 #국빈 방문·차이나머니 과시하지만 #최근 사업 중단·연기 사례도 속출

지난 3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싱 대사의 예방을 받은 직후였다. 2017년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다섯 번째 순방국으로 중국을 찾았다. 정상 간 방문에는 답방이 외교 관례다. 시 주석은 3년째 답방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해 6월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동 직전 평양을 찾았다.

시 주석은 2013년 국가주석 취임 이래 지금까지 육대주 69개 국가를 방문했다. 러시아·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비중이 높다. 최고 수준의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작(協作·협업의 뜻) 동반자 관계’로 규정한 러시아는 국빈 방문과 소치 동계올림픽 참관, 다자회의 참석 등 8차례 방문했다. 시 주석은 집권 8년간 총 240일, 연평균 30일 동안 해외를 순방했다(그래픽). 두 차례 소련 순방 외에 평생 중국에만 머물렀던 마오쩌둥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의 빈도다.

정상외교가 ‘외교의 꽃’이라면 순방외교는 ‘정상외교의 꽃’이다. 순방국 정상은 물론 국민과 스킨십을 통해 군사 동맹(혹은 우호 관계), 경제협력, 문화교류를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여서다. 순방은 또 제3국을 견제하거나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해외순방을 대통령의 ‘업적’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해외 순방지 선정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를 고려한다. 첫째, 순방 대상국의 전략적 중요성과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다. 둘째, 정부의 특정 외교 정책이다. 냉전 시기 강한 반공 기조에도 미·중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닉슨의 중국 방문이 대표 사례다.

시 주석이 8년간 순방한 국가들을 보면 중국이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국가는 러시아다. 해마다 1회꼴이다.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됐지만, 러시아는 중국과 긴 육상 국경을 마주한 인접 강대국이다. 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부터 두 나라 공산당은 당 대 당 관계로 맺어진 오랜 우방이다. 최근에는 군사 동맹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여기에 시진핑은 국가주석 외에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한다. 공산당·국가·군 세 측면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러시아를 해마다 찾은 이유다. 단 올해는 11월 10일 상하이협력기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상회담이 화상회의로 대체되면서 순방이 불발됐다.

시 주석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세 차례 방문했다. 남아공은 집권 후 첫 순방지였다. 중국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제3세계와의 관계를 외교의 기초라며 예우한다. 중국 외교부장은 매년 첫 순방지로 아프리카를 찾는다.

일대일로 지나는 요충 국가 집중 방문

시진핑 정부의 외교 코드는 지역별 순방 빈도에 숨어있다. 러시아·중앙아시아·동남아·중남미·서유럽이 핵심이다. 지난 8년간 시 주석의 연도별 첫 순방지에도 포함됐다. 외교적으로 중시한다는 의미다.

시진핑 해외 어디 다녔나

시진핑 해외 어디 다녔나

우선 중국이 가장 공을 들여온 러시아·중앙아시아·동남아는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가 관통한다. 여기에 2017년 시 주석은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최초로 북유럽을 순방하면서 일대일로(21세기 육·해상 신 실크로드)의 세 번째 루트인 빙상 실크로드를 공식화했다. 일대일로 성공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모습이다.

중남미는 차이나 머니가 집중 공략한 지역이다. 중남미의 2대 무역 파트너이자 중남미 최대 차관 공여국인 중국의 중남미 누적 대출액은 1500억 달러를 넘어선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대 중남미 대출 총액을 상회한다. 중국은 중남미의 자원·에너지·식량에 관심이 많다.

서유럽은 더 의미심장하다. 유럽 ‘구대륙’ 국가는 중국 문명에 인류학적 관심을 표명해왔다. 반면 현안은 대체로 관망에 그쳤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이 민주·인권·자유로 대변되는 국제 보편가치와 서구 중심의 기존 질서에 도전하자, 유럽은 우려와 경계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지도부는 특히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경제를 중심에 둔 미·중 대결이 가시적이고 표면적이라면, 중국과 유럽의 대립은 근원적 가치에 중점을 둔다. 사실 21세기 초반부터 달라이 라마의 유럽순방 등을 둘러싸고 중·유럽 간 관계의 균열이 감지됐다. 이후 중국은 유럽을 시간을 충분히 두고 설득할 전략적 관리 대상으로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순방의 경제효과 회의론 대두

시 주석의 순방 형식도 흥미롭다. 상당수가 국빈방문(State visit)이다. 통상 국빈방문은 임기 중 한 차례가 보통이다. 시 주석은 같은 나라를 여러 차례 국빈방문한다. ‘순방 효과’를 기대하는 국가가 많아서일 것이다. 중남미 등 차이나 머니에 목마른 개발도상국이 이 부류에 속한다. 개도국은 중국의 경제적 성공에 감명을 받고, 중국과 우호 증진이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선진국 역시 시 주석 특유의 ‘통 큰 선물’에 관심이 많다. 시 주석은 2019년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45조원가량의 경제 효과를 수반했다고 알려졌다.

다만 이 ‘선물’이 순방국의 장기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우선 순방 효과의 지속 기간이 짧거나 불분명하다. 다른 요인도 있었지만 2014년 시 주석의 한국 방문 이후 2016년까지 한·중 간 수출입 총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또 시 주석이 순방을 계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하지만, 실제 사업은 연기·중단·전면 재검토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향후 시진핑 순방 효과는 경제보다 오히려 정치적 파급력에서 찾아야 할 전망이다.

한국은 시 주석 방문을 계기로 한한령(限韓令) 해제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 입장을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역으로 중국의 기대는 무엇일까. 시 주석이 올해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국빈 방문한 미얀마를 보자. 미·중 경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중국은 미국에 공동으로 대항할 조력자가 절실하다. 특히 중국-미얀마 경제회랑을 만들어 에너지·운송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봉쇄선을 돌파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경제(일대일로), 기술(5G), 가치와 이념(홍콩·신장·티베트 인권 문제) 이슈에서 협력 또는 적어도 중립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전략적 모호성을 지속하는 한국에 한쪽을 지지해달라는 압박은 큰 정치적 부담이다. 의전상 답방을 성사했다는 명목상 성과보다는 시 주석 방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가치와, 시 주석 방한이 불러올 나비 효과는 무엇일지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시 주석이 미얀마를 콕 짚어 방문한 이유는

시진핑 주석은 올해 1월 17~18일 이틀 일정으로 미얀마를 국빈 방문했다. 2020년을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의 대면 외교가 마비 상태에 이르기 직전의 일이다. 중·미얀마 수교 70주년 기념을 방문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시 주석의 출국 시점은 의미심장하다. 출국 이틀 전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가 체결됐다. 통상 3월로 예정된 양회(兩會)가 열리기 전이었다. 게다가 지역 순방이 아닌 미얀마만을 위한 단독 방문이었다. 실상 시급하고 중요한 방문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공조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은 미국과 인도의 연합에 대응할 우회로가 절실하다. 중국 쿤밍(昆明)과 미얀마 차우크퓨항 간에 건설된 송유관과 가스관은 인도양과 믈라카 해협이 봉쇄당할 경우 자원 수송로가 된다. 중국은 송유관을 따라 도로와 철도 인프라 구축을 약속했다. 육상 운송로까지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미얀마 입장에서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 약속도 매력적이지만, 더욱 긴요한 것은 정치적 지지다. 2017년 미얀마 정부는 군부가 로힝야족 학살을 방조하면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시 중재를 자처하며 사실상 미얀마를 옹호했던 유일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로힝야 문제에 대한 3단계 해결 방안을 포함한 중국식 패키지 딜은 경제와 정치를 모두 담았다. 반면에 한국의 신 남방 정책은 주로 경제 분야에만 치중하고 있다. 미얀마의 오랜 반중(反中) 여론마저 누그러뜨리는 중국의 동남아 공세가 매섭다.

◆표나리

중국 칭화대 정치학 박사.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EIP Beijing), 서강대 중국연구소를 거쳐 국립외교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의 북극 진출 정책과 일대일로 ‘빙상 실크로드’ 전략의 내용 및 함의」「중국의 대외 행동에서 문화 요인의 영향」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표나리 국립외교원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