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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땐 상상 못한 하루 4끼…정수정 "임산부 역 안 할 이유 없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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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 크리스털로도 활동 중인 배우 정수정을 새 주연 영화 '애비규환'으로 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에이치앤드]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 크리스털로도 활동 중인 배우 정수정을 새 주연 영화 '애비규환'으로 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에이치앤드]

“임산부라고 했을 때 ‘헉’ 했는데 대본 보니 너무 재밌어서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첫 스크린 주연작 ‘애비규환’(12일 개봉, 감독 최하나)에서 임신 5개월 차 대학생 ‘토일’을 연기한 정수정(26)의 말이다. 걸그룹 에프엑스의 ‘크리스탈’로 활동해온 그다. 아이돌 출신 배우가 연하 남자친구와 혼전 임신을 하고 결혼을 선언한 임산부 역할이라니 파격적 행보다. 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이미지에 대해 크게 생각하진 않는다”면서 “당차지만 뻔하지 않은 성장통이랄까. 강단 있고 스스로를 100% 믿는 토일 같은 캐릭터를 살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첫 스크린 주연 '애비규환' 12일 개봉 #연하 남친과 임신 5개월 대학생 연기 #"처음엔 '헉' 했지만 대본 너무 재밌었죠" #언니 제시카의 K팝 무대 뒤 소설 『샤인』 #"너무 공감…저희 경험 녹아든 부분 있죠"

'연기돌' 넘어, 거침없는 '배우' 정수정

첫 연기에 도전한 시트콤 ‘볼수록 애교만점’(2010)으로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여자신인상을 차지하고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2012)에선 실제 미국서 나고 자란 경험을 살려 미국 유학 중 집이 망한 고등학생 역할을 맛깔나게 소화한 그다. SBS ‘상속자들’(2013),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 등 드라마마다 거침없는 캐릭터를 맡아 안정감 있는 연기를 펼쳐왔다. 지난달부터 방영한 OCN ‘써치’에선 최전방 비무장지대의 의문의 사건을 밝히는 대찬 엘리트 장교 역을 맡았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 토일도 예사롭지 않다.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며 “누굴 닮아 그러냐”고 호통치자 그는 그길로 15년 전 엄마(장혜진)와 이혼하곤 연락이 끊긴 친아빠(이해영)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얼굴도 잊어버린 친아빠, 엄마와 재혼한 현재 아빠(최덕문), 예비 아빠인 남자친구 호훈(신재휘)까지, 제목답게 ‘애비들’로 인한 눈 뜨고 못 봐줄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소동이 펼쳐진다.

임산부 역, 운동 다 끊고 하루 3~4끼 먹었죠

'애비규환'에서 정수정(왼쪽부터) 고등학교를 1년 꿇은 스무 살의 고3 남자친구를 둔 대학생 임산부 토일 역을 맡았다. 극 중 토일의 의상은 정수정과 최하나 감독이 집에서 가져온 것이 적지 않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애비규환'에서 정수정(왼쪽부터) 고등학교를 1년 꿇은 스무 살의 고3 남자친구를 둔 대학생 임산부 토일 역을 맡았다. 극 중 토일의 의상은 정수정과 최하나 감독이 집에서 가져온 것이 적지 않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이번에 각본을 겸해 장편 데뷔한 최하나 감독에 따르면 토일은 “‘임신했어’ 같은 큰일도 ‘나 돈가스 먹었어’처럼 얘기할 수 있는 아이”다. “(아이돌 활동 때도)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항상 사람은 자기 의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정수정도 토일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이해 안 간 순간도 있었단다. 그럴 땐 최 감독이 설명에 나섰다. 90년대생 또래에 취향까지 비슷한 최 감독과는 촬영 전 단둘이 대본 리딩하며 좋은 친구 사이가 됐다.
최 감독이 첫 미팅 때 “임산부니까 볼살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한 덕에 “평소 좋아하는 스포츠, PT, 필라테스 다 끊고 하루 서너 끼씩 편하게 먹은” 것도 아이돌 시절엔 꿈도 못 꿨을 경험이다. 일어날 때 배를 잡는 등 임신한 연기가 자연스럽다고 하자 “실제로 (배 보형물을) 차보니까 진짜 임신한 것마냥 나왔다. 없던 게 생기니까 불편한 자세가 저절로 생기더”란다.

'기생충' 배우 장혜진과 엄마·딸 엔딩 "쾌감"

'기생충'에서 충숙 역을 맡았던 장혜진(왼쪽부터)이 이번 영화에서 정수정과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기생충'에서 충숙 역을 맡았던 장혜진(왼쪽부터)이 이번 영화에서 정수정과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토일이 한문 교사인 새아빠와 어려운 사자성어를 줄줄대며 외국어 하듯 말다툼하는 장면도 재밌다. 정수정은 “시나리오 볼 땐 사전 찾아 읽으면서 너무 재밌었는데 막상 하려니 입에 안 붙어서 힘들었다. 긴 장면인 데다 싸움신이라 대사 ‘핑퐁’이 돼야 해서 걱정했는데 현장 가서 ‘아빠’랑 하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나왔다”며 웃었다. 현실 부모자식 호흡을 찰지게 살린 토일 엄마 역의 장혜진, 새아빠 역의 최덕문을 그는 ‘엄마’ ‘아빠’라 불렀다. “현장에서 실제 엄마‧아빠처럼 두 분과 제 일상, 고민 얘기도 하며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게 또 영화에 보인 것 같아 감사하죠.”

스포일러 탓에 다 밝힐 순 없지만 토일과 엄마의 엔딩장면도 “되게 새로웠다. 촬영하면서 쾌감이랄까. 멋있었다. 많은 엄마, 딸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돌이켰다.

쭈글쭈글한 분장도 제가 끌리면 도전하죠

영화에서 정수정(오른쪽)은 토일이 고교시절 헤비메탈에 푹 빠진 과감한 모습도 연기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에서 정수정(오른쪽)은 토일이 고교시절 헤비메탈에 푹 빠진 과감한 모습도 연기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실제 결혼 생각도 해봤을까. “어릴 때부터 결혼과 임신, 예쁜 아기에 대한 상상은 늘 했어요. 평범하게, 모든 여자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요. 실제 남편이 이 영화 호훈처럼 너무 ‘해바라기’면?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웃음)”
‘애비규환’이 초청돼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그는 “시기(코로나19)가 시기다 보니 큰 축제 느낌은 아니었지만, 첫 영화로 부산영화제에 간 것만으로 너무 영광이었다”고 했다. “평소 독립영화의 현실감, 정적이고 감정이 어우러진 면을 좋아한다. 이번 영화 제작사 아토ATO도 ‘우리들’(감독 윤가은)을 봐서 알고 있었다”는 그다.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고, 작은 영화도 좋은 작품이면 다 OK, 열려있다”고 거듭 말했다. “재밌는 것, 도전을 좋아해요. 쭈글쭈글하게 분장하든 뭐든 제가 끌리면 하는 것 같아요. 긴 생머리를 좋아하지만 ‘슬기로운 감빵생활’ 땐 캐릭터에 맞게 단발로 싹둑 잘랐죠.”

가수가 판타지라면 연기는 날 것 그대로

가수활동에 대해서도 “항상 열려 있다.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과 연기 둘 다 할 수 있는 게 축복 같다”고 했다. 배우 선배들에게 “네가 춤을 춰서인지 몸 쓰는 게 자유롭고 편해 보인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는 그는 “연기가 현실적이라면 무대는 그 이상의 판타지적인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차이점을 말했다. “일단 (가수) 무대는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집어줘야 하고, 끼 부려야 하고, 잡아먹어야죠. 화려하고 뭔가 각이 맞춰진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연기는 진짜 날 것 그대로인 것 같아요. 연기하다 진짜 가끔 저도 모르게 가수 때 습관 탓에 렌즈를 볼 때가 있어요. 그럼 ‘악 죄송해요!’ NG 나는 거죠.”

언니 제시카 소설 『샤인』 "너무 공감"

정수정(왼쪽부터)과 3살 터울 언니 제시카 자매. 2018년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K 뮤지엄에서 열린 시계 브랜드 '피아제'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중앙포토]

정수정(왼쪽부터)과 3살 터울 언니 제시카 자매. 2018년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K 뮤지엄에서 열린 시계 브랜드 '피아제'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중앙포토]

언니인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 제시카가 최근 K팝 스타들의 냉혹한 현실을 들춰낸 첫 소설 『샤인』(알에이치코리아)을 발표해 화제가 된 터다. 정수정은 “픽션이지만 언니가 실제 그 일을 했고 그런 일생을 살아온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저 같은(아이돌 출신) 입장에선 너무 공감 갔다”면서 “되게 디테일하게 무대 뒤가 어떤지 알 수 있어서 독자들도 놀라실 것 같다. 언니와 저의 경험이 좀 녹아든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담아두지 않는 면은 엄마랑 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엄마도, 언니도 빨리 잊어버리고 별로 신경 안 쓰고 부정적인 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거든요. 고맙죠. 가족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언니가 그런 모습을 나한테 보여줬고 알게 모르게 많이 배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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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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