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돌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감독 “여성들 신나는 활약상 보고 싶었죠”

중앙일보

입력 2020.11.04 13:18

업데이트 2020.11.04 17:00

3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100만 돌파 기념 사진을 찍은 (왼쪽부터) 배우 김종수, 박혜수, 고아성, 이솜, 그리고 이종필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3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100만 돌파 기념 사진을 찍은 (왼쪽부터) 배우 김종수, 박혜수, 고아성, 이솜, 그리고 이종필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1990년대 대기업의 페놀 유출 사건에 맞선 말단 여직원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개봉 13일째인 3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3일까지 총 관객 수는 101만명. 지난 8월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개봉작 중 100만 관객을 넘어선 건 개봉 11일째 돌파한 성동일‧하지원 주연 영화 ‘담보’와 이 영화뿐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 인터뷰

‘담보’가 추석연휴 반짝 회복한 관객 수의 수혜를 봤다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평일 하루 관객수가 10만명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거둔 성과다. 90년대를 맛깔나게 구현한 90년대생 주연 배우 고아성‧이솜‧박혜수의 차진 호흡에 더해 억지 신파 없는 내용, “어제의 너보다 오늘 더 성장했다” 같은 대사 등이 입소문 나며 꾸준히 관객이 들고 있어 손익분기점인 190만 관객(총제작비 79억원) 도달도 넘볼 만하다.

"급전개, 손발 오그라든단 평 알고있죠"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 다음날인 지난달 22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종필(40) 감독은 “배우들과 같이 반응 찾아보곤 하는데 배우들이 행복해하면 저도 좋다. 상업영화로서 괜찮다, 재밌다는 반응이 좋더라”면서 “후반부 반전이 지칠 만큼 많다, ‘급전개’다, 손발 오그라든다는 말씀들도 다 사실이고 제 선택이었다”며 겸허하게 웃었다.

그에게 이번 영화는 이경규 제작 코미디 영화 ‘전국노래자랑’(2013)과 조선 최초 여성 판소리꾼을 그린 ‘도리화가’(2015)에 이은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전작이 차례로 97만, 31만 관객에 그친 탓에 이번이 첫 100만 돌파다.

제작사 더 램프가 “90년대 배경에 상고 나온 말단 여성 직원들이 파이팅하는 얘기”라며 연출 제안해왔을 때 그는  “여성 감독이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출 제안한 게 당신이 처음이다. ‘도리화가’는 재밌지 않았는데 ‘전국노래자랑’이 괜찮았다”는 제작사 대표의 말에 그도 마음을 돌렸다. ‘전국노래자랑’은 평범한 이들의 사연이 어우러지며 꿈을 이뤄낸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와도 닮았다.

"여성들 신나는 활약상 보고 싶었죠" 

90년대 실제 대기업 토익 강사로 일했던 홍수영 작가의 시나리오가 원작이다.
“홍수영 작가의 초고는 사회 고발극의 성격이 강했다. 성추행 장면도 많고. 근데 묵묵히 정면승부, 돌파해서 해결해나가는 캐릭터들이 좋았다. 무거운 소재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신나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극중 여성 캐릭터들이 ‘부당합니다’ ‘힘듭니다’ 하며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신나게 활약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도 재밌지만 ‘써니’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영화를 더 좋아한다”는 그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 공부하던 시절에도 “남자 연출자 작품은 뭔지 다 알겠어서 촬영 부탁받아도 잘 안 했는데 여자 연출자 작품은 왜 이렇게 썼을까,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거들곤 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영화인가, 고민도 했죠"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독립영화가 아닌 총제작비 79억원의 상업영화가 20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문 시도다.
“페미니즘 영화인가, 고민도 해봤는데 개념을 찾아보다 그만뒀다. 대중영화란 생각이 먼저였다. 10대 때 본 ‘비포 선라이즈’가 떠올랐다. 여성 캐릭터가 자기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는 영화를 그때 처음 봤다. 신선하고 새로웠다. 남자냐, 여자냐를 떠나 그렇게 자영(고아성), 유나(이솜), 보람(박혜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실제 페놀사건이 벌어진 건 91년도인데 영화 배경은 95년으로 정했다.
“95년도의 세계화 분위기가 중요했다. 토익반을 실제 개설한 기업이 있었고 김치‧태권도‧진돗개까지 별 게 다 세계화되던 시기였다.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고 ‘We are the world(우리가 세계다)’라며 황금빛 미래가 펼쳐지는 물결 이면에 페놀사건 같은 굉장히 한국스타일의 사건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88서울올림픽 한다고 상계동 철거한 것처럼 말이다. 90년대 실제 존재했지만,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 파독 간호사와 달리 잊혀져있던 고졸 사무보조원들에 대한 기억도 영화에 담고 싶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는 박완서의 1977년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의 영향도 받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1등, 엘리트는 소수고 다수는 박수쳐주지 않아도 묵묵히 살아가는 것 아닐까”라면서다.

극중 2년 뒤엔 IMF…"승리해본 경험이 중요하죠" 

이 영화의 진정한 결말은 불과 2년 뒤에 닥쳐올 IMF금융위기란 해석도 나오더라.
“정말 고민했다. 관객들이 행복하게 기분좋게 볼 대중영화를 만들려면 해피엔딩이어야 하는데 곧 IMF 불어 닥치고 모두 잘릴 거란 걸 우리가 알지 않나. 마냥 해피하게 끝내도 될까, 각본을 맡은 손미 작가와 고민하다 이런 결론을 냈다. 한번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자기만의 방식으로 극복이랄까, 승리랄까, 해결해본 경험이 중요하다. 이겨낸 경험 때문에 또 다시 어떤 게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보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상사 봉현철 부장(김종수)을 제외하면 영화에 진정한 ‘어른’이랄 만한 기성세대 캐릭터가 드문데.
“김종수 배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실제 현실에 이 나이대 괜찮은 남성 이미지가 없는데  봉현철 캐릭터가 조심스럽다고. (너무 판타지 같지 않도록) 최대한 담백하게 연기하라고 했다.”

한예리와 공동 주연한 단편 ‘백년해로외전’, 형사 역을 맡은 ‘아저씨’ 등에서 배우 활동도 겸해온 그다. 그래서인지 “나보단 배우들이 칭찬받는 게 더 행복하다”고 했다. 100만 돌파에 대해선 “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걸까요?’ 라는 질문을 던진 영화에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했어!’ 라고 대답해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4일 본지에 소감을 전했다.  “상업영화 감독은 직업이죠. 이 영화 진짜 신박하다, 그런 평이 늘 목표죠.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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