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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 마약비상] 上. 중국으로 간 한국 마약상

중앙일보

입력

중국발(發) 마약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에서 값싼 마약이 대거 유입되면서 곳곳에서 마약 비상이 걸렸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히로뽕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산인 데다, 최근에는 마약 성분이 든 중국제 다이어트약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중국으로 간 한국의 마약기술자들이 주로 동북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 성)을 중심으로 마약을 제조, 국내에 반입하는 것이다.

본지 취재팀은 3회에 걸쳐 중국제 마약의 국내 반입.유통 실태와 그 문제점을 집중 진단했다.

◇마약 조직

경찰은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마약조직 4~5개파를 파악, 중국 공안당국과 공조하며 수사 중이다.

경찰이 포착한 조직은 원모.李모.金모.유모 파 등이다.

그러나 실제 한국인이 이끄는 마약 조직은 수십개에 달한다는 것이 관계 당국의 추정이다.

당국은 중국에 수감 중인 한국인 마약사범 가운데 두목급이 없고 마약 제조를 돕거나 밀매에 가담하는 수준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는데 주목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한국인 마약 조직이 아직도 건재하고, 이들을 통한 한국 내 마약 유입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인 마약기술자들이 이처럼 대담하게 조직을 구성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동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중국동포는 ▶우리말에 능통한 데다▶유사시 은신처를 제공하고▶현지 지리에 밝고 공안당국과 선을 댈 수 있으며▶한국 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워 밀수출의 손쉬운 루트가 됐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 마약조직은 선양(瀋陽).다롄(大連) 등 중국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동북3성 지역에 밀집해 있다.

이 지역에는 히로뽕의 원료가 되는 마황초의 자생지가 산재한 데다, 공공연하게 재배하는 곳도 많아 원료 수급에 어려움이 없는 점이 마약조직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한족들까지 히로뽕 제조에 가세해 조직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이들을 이용해 산둥성 등 다른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중국동포와 한족들이 국내에 잠입, 독자적으로 점조직 형태의 거래망을 구축했다는 첩보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마약사범들은 1989년 시작된 이른바'범죄와의 전쟁'의 포위망을 피해 중국으로 도피,밀조공장을 차렸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생계에 쪼들린 평범한 한국인 사업가와 실업자들을 끌어들여 중국-한국 밀거래선을 구축했다.

실제로 선양에서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金모(44)씨는 실직한 뒤 2000년 중국에 들어가 마약조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金씨의 부인은 "몇달째 연락이 안돼 수소문한 결과 중국 공안에 체포된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칭다오(靑島)에서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은 선모(44)씨는 2000년 부도를 내고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지명수배되자 중국으로 간 뒤 마약 제조에 손을 댄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부인은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부도 건이 해결되지 않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강호 관세청 마약조사과 사무관은 "중국에 수감된 마약사범 가운데 상당수는 마약 전과가 없다"며 "이들은 한탕주의에 빠져 마약 운반책 등으로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매 수법

마약제조책은 일단 중국 현지에서 자신들이 생산한 마약을 외국에 밀거래할 국제 중개상과 거래를 튼다.

이때 주로 이용되는 곳이 중국동포가 밀집한 지역의 특급호텔이다.

선양 H.J호텔과 다롄의 I호텔 등은 주요 거래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중국 공안이 매춘을 단속하기 위해 불시에 외국인이 묵고 있는 특급호텔의 객실 문을 강제로 열고 수색했지만, 요즘은 호텔에 투자한 외국 자본가의 압력과 외국인 관광객의 불평을 고려해 이런 불시검문을 없앴다.

한국과 일본 등으로 내보낼 때는 주로 중국동포나 전과가 없는 한국인이 '지게꾼(운반책)'으로 동원된다.

한국으로 떠나기를 원하는 중국동포에게 여권발급 수수료 등을 대신 내주거나 아예 위조여권을 만들어주고 밀매책으로 이용한다.

지난해 7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히로뽕 3.12㎏을 반입하려다 적발된 중국동포 4명이 이같은 유형에 속한다.

또 얼마 전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한국인 공급책으로부터 돈을 받고 히로뽕을 몰래 들여오려다 붙잡힌 황모(46)씨의 경우처럼 중국으로 여행하는 한국인이 많아진 뒤부터는 한국인 여행객이 활용된다.

이 밖에 동남아.아프리카 등 제3국 출신자들이 지게꾼으로 동원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특별취재팀 이규연.김기찬.김창우.강주안.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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