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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자전거 타고 뛴다…사이배슬론대회 도전하는 한국 과학

중앙일보

입력

#하지마비 장애인 김영훈(27)씨는 2년 전부터 주말마다 중앙대에서 로봇 자전거를 탄다. 김씨는 2016년 다이빙을 하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하지만 '로봇 자전거'에 올라타면 모터 등 외부 동력 없이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페달을 밟아 주행할 수 있다.

#이주현(20·지체장애 1급)씨는 4일 오전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전 본원의 스포츠 센터에서 로봇을 착용하더니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이씨는 지난해 고교 졸업을 3주 앞두고, 외할머니 병문안을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완전마비됐다. 평소에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지만 로봇을 착용하면 걷기는 물론 계단 오르내리기, 앉았다 일어나기 등이 자유자재로 된다.

중앙대의 로봇자전거를 타고 있는 김영훈 선수.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갖고 있지만 혼자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주행한다. [중앙대 제공]

중앙대의 로봇자전거를 타고 있는 김영훈 선수.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갖고 있지만 혼자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주행한다. [중앙대 제공]

사이애슬론, 장애인이 로봇 장치 착용하고 기록 겨뤄

김영훈씨와 이주현씨는 이달 13일 국제 장애인 대회인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에 한국 대표팀으로 참여하는 대표 선수다. 김씨는 중앙대에서 '전기자극 자전거' 종목에, 이씨는 KAIST 대전 본원에서 '착용형 외골격 로봇' 종목에 각각 출전한다. 사이배슬론은 인조인간을 뜻하는 사이보그(cyborg)와 경기를 뜻하는 라틴어 애슬론(athlon)의 합성어다. 장애인들이 로봇과 같은 생체공학 보조 장치를 착용하고 기록을 겨루는 스포츠 대회다. 종목은 ▶뇌-기계 인터페이스 ▶전기자극 자전거 ▶로봇의수 ▶로봇의족 ▶전동 휠체어 ▶착용형  외골격 로봇 등이다. 두 사람 모두 대회 우승을 목표로 기록 단축을 위해 막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 연구팀이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나동욱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개발한 '워크 온 슈트 4'. [KAIST 제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 연구팀이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나동욱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개발한 '워크 온 슈트 4'. [KAIST 제공]

중앙대, AI로 근육수축 신호…장애인이 자전거 페달 밟아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걸을 수 있을까. 비결은 각각 전기자극 기술과 외골격 로봇이다. 사이배슬론의 전기자극 자전거 종목에는 한국 대표팀이 올해 처음으로 출전한다. 신동준 중앙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김정엽 서울과기대 교수, 박기원 인천대 교수, 양은주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와 함께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주행할 수 있는 로봇 자전거 '임프로B'를 개발했다.

임프로B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장애인의 근육 상태를 측정하고 최적의 근육 수축 신호를 생성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이 모터 등 외부 동력의 도움 없이 자신의 근육으로 페달을 밟을 수 있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최대 시속 25㎞로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 근육피로보상 알고리즘으로 주행거리도 극대화한다. 신 교수는 "대회 이후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근력 보조가 필요한 노약자·환자를 위한 스마트 모빌리티로 연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공경철 교수팀이 개발한 워크온수트4를 착용하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이주현 선수. [KAIST 제공]

KAIST 공경철 교수팀이 개발한 워크온수트4를 착용하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이주현 선수. [KAIST 제공]

KAIST, '입는 로봇'으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 걸어

이주현 씨의 출전은 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돕고 있다. 공 교수 연구팀은 2016년 사이배슬론 첫 대회에 같은 종목에 참여해 동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대회 준비를 위해 엔젤로보틱스·세브란스재활병원·영남대·재활공학연구소 등이 협력해 '워크온수트4'를 개발했다. 워크온수트4는 착용자가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1분 이상 서 있는 것이 가능하다. 공 교수는 "지난 대회 출전 선수들이 착용했던 로봇은 지팡이 없이 1초도 서 있을 수 없었다"면서 "안전성은 물론, 구동력, 보행속도, 사용 시간 등 여러 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로봇업계에서는 사이애슬론에 등장하는 이같은 웨어러블 로봇의 상용화가 멀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원(KEIT)은 올 3월 '웨어러블 로봇의 기술동향과 산업전망' 보고서를 통해 "웨어러블 로봇 관련 국내 시장은 아직 준비 단계지만, 최근 삼성·LG 등 대기업이 웨어러블 로봇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라 급성장이 예측된다"고 전망한 바 있다. 산업연구원은 글로벌 웨어러블 로봇 시장이 2017년 5억2800만 달러(6252억원)에서 2025년 83억 달러(9조8000억원)로, 연 평균 41% 고성장 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웨어러블 로봇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이미 우리 일상 속에 들어오고 있다"면서 "의료재활, 일상생활 지원은 물론, 산업현장에서도 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이배슬론 대회의 본질은 각국 연구팀이 경쟁을 통해 장애 극복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인만큼,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의 기술을 공개하고 글로벌 기술을 배우겠다"고도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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