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 예술공간 국립현대미술관 전면에, 웬 카페 사인

중앙일보

입력 2020.11.04 00:03

업데이트 2020.11.0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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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주변 문화재를 배려해 낮게 설계된 건물 한가운데 카페 간판이 보인다. 중심을 비우기 위해 미술관 표지와 출입구도 오른쪽에 둔 상황에서 미술관 부속시설인 카페가 건물의 중심이 된 풍경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주변 문화재를 배려해 낮게 설계된 건물 한가운데 카페 간판이 보인다. 중심을 비우기 위해 미술관 표지와 출입구도 오른쪽에 둔 상황에서 미술관 부속시설인 카페가 건물의 중심이 된 풍경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현대미술관과 경복궁이 양옆으로 자리한 서울 삼청로.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지자 유난히 빛을 밝힌 간판이 눈에 띈다. ‘TERAROSA COFFEE(테라로사 커피)’. 국내 유명 카페 간판이다. 그 아래 카페 전용 출입구도 보인다. 이것은 카페인가, 미술관인가.

서울관 불밝힌 ‘테라로사 커피’ 또렷
공용 출입구도 카페 전용 출입구로
“공공미술관 특성 감안한 조율 필요”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국내 유명 카페 테라로사가 최근 입점했다. 2013년 서울관 개관 때부터 있던 다른 카페 자리에 입점했는데, 미술관 전면에 카페 간판을 내걸어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상업 카페 간판이 국가 대표 미술관 건물 전면부를 점령했다는 지적이다.

테라로사 내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테라로사 내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현재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카페 출입구를 쓰지 않고 미술관 출입구 하나만 이용해야 하는 상태지만, 미술관의 전시동 내부 공간과 마당을 이어주던 공용 출입구도 사실상 카페 전용 출입구로 변모했다.

테라로사가 입점한 곳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물 중에서도 가장 야트막한 부분이다. 이른바 통경축(조망권 확보 공간) 구간으로, 주변 문화재 경관 흐름을 연결하려 건물 높이를 최대한 낮춰 설계했다. 이곳 마당 맞은편엔 경복궁이, 뒤로는 종친부(宗親府·조선시대 왕실의 어보와 어진을 보관하고 의복을 관리하던 곳) 옛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건축가 민현준 홍익대 교수는 “중앙 입구로 진입하는 과천관과 다르게 서울관은 그 중심을 문화재에 양보하고 마당을 낸 곳”이라며 “설계 당시 뒤편 종친부를 부각하기 위해 미술관 입구조차 그곳으로 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카페 자리는 미술관 마당과 전시 공간을 연결해주던 곳인데, 카페가 폐쇄된 벽을 설치해 그 연결이 차단됐다. 여기에 상업 간판이 내걸리면서 미술관 입구가 카페 부속시설처럼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카페 공간의 원 모습. 박영채 사진작가

카페 공간의 원 모습. 박영채 사진작가

지난해 말까지 있던 카페(그라노)는 로비에 작은 표지판만 있었지, 건물 외부 간판은 없었다. 테라로사는 두 차례 단독 입찰 끝에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과 연간 약 1억원으로 5년 임대 계약을 맺었다.

채광이 특색이던 통창을 가벽으로 거의 다 가린 내부 인테리어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미술계의 한 원로는 “새로 생긴 카페가 간판도 너무 눈에 띄고, 내부 디자인도 미술관의 전체 분위기를 압도한다”고 말했다.

독립큐레이터 변현주(더플로어플랜 대표)씨는 “해외에서 미술관 등에 입점한 상업 공간이 독립적인 공간처럼 전면 부각된 경우는 못 봤다”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미술관 전면에 상업 시설 간판이 걸린 것은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건물이 미술관인지 카페인지 헷갈릴 정도”인 건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윤지희라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도 “카페 간판 등이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서 미술관의 문화 경관을 지배하는 수준까지 된 건 공공 공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같은 학교 장용순 교수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카즈오 세지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주변 지역과 잘 어울리도록 겸손하게 설계된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극찬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부끄러운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수익을 추구하는 입점 카페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큐레이터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장)씨는 “국가를 대표하는 미술관에 입점한 커피숍이라면 수익 이전에 입점한 기관의 격도 고려해야 한다. 미술관도 그런 점을 설득하고 최선의 방안을 찾았어야 했다”고 했다.

김장언 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2팀장도 영국의 테이트, 프랑스의 루브르 등 유럽 각국의 대표 미술관에도 카페가 있지만, 외부에 간판을 내건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감수성의 문제다. 한 사회가 문화의 격을 어떻게 설정하고 균형을 맞추느냐를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미술관 내외부에선 작품 설치든 공연이든 다양한 행사가 일어날 수 있다”며 “가급적 간판은 줄이고 공간은 비워두고 쓰는 게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 강희경 사무국장은 “테라로사의 간판과 내부 인테리어는 미술관 내부에서도 논의를 거쳐 합의한 것”이라며 “그나마 해외 프랜차이즈 카페 대신 국내 대표 카페가 들어온 게 다행 아닌가. 관람객들은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는 “미술관 카페 간판이 과하다는 시각 자체가 과한 것”이라며 “카페 자리가 남서향이라 점심때부터 해질 때까지 직사광선이 심하다. 가벽으로 빛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설계자인 민현준 교수는 “건축 당시 공유된 장소의 정체성과 관련 내용을 체계화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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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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