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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직장내 괴롭힘' 시각서 따져봤다, 추미애의 윤석열 내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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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윤 총장이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자, 추 장관이 "장관은 총장의 상급자"라고 반박했다. 수사 지휘권을 놓고 두 사람은 줄곧 긴장관계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윤 총장이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자, 추 장관이 "장관은 총장의 상급자"라고 반박했다. 수사 지휘권을 놓고 두 사람은 줄곧 긴장관계다. [뉴스1]

기상천외한 언행을 일삼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겉으로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인 출신 장관이라 해도 법과 상식의 한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무리수라는 비판이 많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를 계기로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관계에 대해 '부하냐 아니냐'가 큰 논란이 됐다. 윤 총장은 “법리적으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추 장관을 상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추 장관은 곧바로 “장관은 총장의 상급자”라고 반박했다. "내가 당신의 보스야. 덤비지 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법조계에서도 누구 말이 맞는지 갑론을박이다.
 윤 총장은 “장관은 정치인이다. 정무직 공무원이다. 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수사와 소추를 정치인이 지휘하는 셈이다. 이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했다.
 윤 총장은 검찰의 중립과 독립을 강조하는 논리를 폈고, 추 장관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필요성을 내세웠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통상적 상명하복 관계는 아닐 수도 있지만, 지휘권 발동 대상이란 사실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진정한 검찰개혁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 장관'이 총장을 함부로 대하면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훼손하고 그러면 검찰개혁에 역행한다.
 몇발 물러서서 추 장관의 '상사-부하 관계'라는 논리대로 보더라도 문제다.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집요한 압박은 거창한 검찰개혁이 아니라 '나쁜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각도에서 따져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집요하게 압박하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집요하게 압박하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까.

 2018년 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76조 2항에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범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먼저 총장에 대한 인사권이 없는 추 장관이 장관 지위를 이용해 윤 총장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는지 살펴보자. 추 장관은 윤 총장을 겨냥해 “내 명을 거역했다”라거나 “말 안 듣는 총장”이라고 '부하 총장'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난했다. 봉건 왕조시대의 어투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이런 상사를 '나쁜 꼰대 상사'로 여긴다.
 지난 7월 21일 추 장관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윤 총장의 아내와 장모에 대한 자료를 읽었고, 이 장면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됐다. 사실상 윤 총장 망신주기였다.
 10월 19일에는 추 장관이 라임과 윤 총장 처가 의혹 수사 등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검사 접대' 등에 윤 총장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고 적시했다. 처가 의혹에 대해 윤 총장은 지난해부터 수사 지휘와 보고를 일절 받지 않는다고 밝혔는데도 지휘권을 발동했다.
 이에 대해 윤 총장은 "중상모략"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추 장관의 지휘권 남용으로 인해 졸지에 부도덕한 총장으로 내몰리자 정신적 괴롭힘을 당했다고 토로한 셈이다.
 또 하나, 추 장관이 윤 총장의 근무 환경을 악화시켰나. 10월 22일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추 장관의 네 차례 검찰 인사는 한마디로 산 권력 수사하면 좌천으로 압축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질의했다. 윤 총장은 "과거에 저 자신도 경험해본 적 있고요. 검찰 안팎이 다 아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시인했다.
 검찰총장의 임무는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인데,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했다면 근무 환경을 심각하게 악화시킨 셈이 된다. 실제로 추 장관이 말 잘 듣는 '애완견 검사'들을 윤 총장 주변에 감시조처럼 포진시켜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줄곧 제기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대검 주변 도로에 진열돼 있다. [유튜버 서초동 법원 이야기 염순태]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대검 주변 도로에 진열돼 있다. [유튜버 서초동 법원 이야기 염순태]

 물론 윤 총장이 추 장관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고소할 가능성은 작다.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공개 선언한 윤 총장이 추 장관을 상사로 인정할 것 같지 않아서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압박하고 괴롭힐수록 윤 총장의 인기는 치솟고 대검 청사 앞길 양쪽에 윤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 숫자가 늘고 있다.
 차기 정치 지도자 적합도 조사(알앤써치)에서 윤 총장은 이재명 경기도 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윤 총장은 자신을 핍박하는 추 장관에게 내심 고마워할지도 모르겠다. "퇴임 후 봉사할 방법을 고민하겠다"던 윤 총장이 차기 대권으로 직행할 경우 추 장관이 자칫 '1등 공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재명(왼쪽) 경기도지사가 도청 접견실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중앙포토]

이재명(왼쪽) 경기도지사가 도청 접견실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중앙포토]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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