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세정의 시선

"30년 통일운동 조롱거리로" 임수경 속터지게 한 '평양 남매'

중앙일보

입력 2020.06.29 00:19

업데이트 2020.06.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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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989년 7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참가한 한국외대 재학생 임수경이 몰려든 북한 군중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임수경 현상'이 생겼을 정도로 북한 주민들에게 문화 충격을 줬다. [중앙포토]

1989년 7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참가한 한국외대 재학생 임수경이 몰려든 북한 군중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임수경 현상'이 생겼을 정도로 북한 주민들에게 문화 충격을 줬다. [중앙포토]

1989년 7월 1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청바지를 입고 행진하는 전대협 대표 임수경. [사진 임수경]

1989년 7월 1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청바지를 입고 행진하는 전대협 대표 임수경. [사진 임수경]

 1987년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선 후보의 6·29 선언은 민주주의를 외친 6·10 민주 항쟁에 대한 일종의 '항복 선언'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護憲) 시도에 제동을 걸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로 이행하는 이정표 같은 사건이었다.
 그 무렵 국제사회도 변화의 바람으로 요동쳤다. 89년부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하나둘씩 도미노 파산을 선언했다. 이런 역사적 변화를 1년가량 앞서 포착한 노태우 정부가 내놓은 것이 88년 7·7선언이었다. 탈냉전 시대를 맞아 남북 교류 및 대화 모색뿐 아니라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담은 북방정책 추진의 시발점이었다.
 당시 정부는 89년 7월에 열릴 예정이던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측 대표단의 참가를 허용하려다 그해 3월 터진 문익환 목사의 비밀 방북 사건을 빌미로 갑자기 방북 불허 방침으로 돌아섰다.
 여대생 임수경의 평양 비밀 방북은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정부의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 재학 중이던 임수경을 대표로 선발해 일본·서독·동독·소련을 거쳐 북한으로 보냈다. 임수경이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한 날이 바로 31년 전 6월 30일이었다.
 한 세대가 훌쩍 지났지만, 당시 사건이 국내외에 준 충격은 메가톤급이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미국 문화의 상징인 청바지를 입은 발랄한 남쪽 여대생을 보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 '임수경 현상'에 자극받았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많다.
 지금 임수경 방북 사건을 소환한 이유는 최근 한반도 상황이 80년대 말보다 오히려 악화했기 때문이다. 요란한 정상회담 이벤트가 잇따랐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였다. 비핵화라는 핵심 목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할 말을 제대로 못 한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모습. 김여정은 최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대남 공세를 주도해왔다. [연합뉴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모습. 김여정은 최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대남 공세를 주도해왔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조선중앙TV 장면. 연락 사무소 건물 신축 등에만 한국 정부 예산 168억원이 투입됐다. 폭파 충격으로 파손된 종합지원센터 피해는 별도다, [뉴시스]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조선중앙TV 장면. 연락 사무소 건물 신축 등에만 한국 정부 예산 168억원이 투입됐다. 폭파 충격으로 파손된 종합지원센터 피해는 별도다, [뉴시스]

 남북 긴장 와중에 통일부 장관이 교체됐다.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을 보면 대부분 주사파 계열 운동권이 주도한 전대협 출신들이다. 임수경(52)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에게 연락이 닿았다.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민주통합당)로 외교통상통일위원 등을 역임한 그는 요즘 사실상 '백조' 신세다.
 -최근 남북 관계가 험악하다.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평양 남매'의 행동이 우려스럽다. 나를 포함해 통일 운동 세력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기 위해 발버둥 치며 부단히 노력해왔다. 30년 이상 어렵게 뚫은 통일의 길이 이번 일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됐다.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다."
 -전대협 출신들이 통일부 장관으로 거론된다.
 "나에게는 아직 연락이 없다. (웃음)"
 -장관 후보 중에 주사파로 분류되는 인사가 있어 우려스럽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절대 주사파가 아니다. 주체사상을 제대로 접한 적도 없는데 평양 다녀오니 그렇게 몰고 갔다. 당연히 종북(從北)도 아니다. 분단국가에서 종북이란 단어는 멀쩡한 사람 한 명 쉽게 죽일 수 있다."
 -31년 전 평양 발언이 화제였다.
 "당시 '저는 북한 체제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북한을 동경해서 온 게 아닙니다'라고 했더니 북측 인사들이 놀라더라. '대한민국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말했고 판문점에서 몸에 태극기를 걸쳤다."

임수경은 방북 중에 평양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목에 두르고 1989년 7월 27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문규현 신부(오른쪽)와 함께 광복절인 8월 15일 오후 2시 22분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분단 이후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최초의 민간인이 됐다. [사진 임수경]

임수경은 방북 중에 평양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목에 두르고 1989년 7월 27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문규현 신부(오른쪽)와 함께 광복절인 8월 15일 오후 2시 22분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분단 이후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최초의 민간인이 됐다. [사진 임수경]

 -'탈북자=변절자' 발언이 논란이었다.
 "술자리에서 (탈북 청년이 운동권에서 보수로 전향한) 하태경 의원을 존경한다고 하길래 내가 하 의원을 비판한 발언이 와전됐다. 여대생 임수경의 영향을 받아 내려온 탈북자들을 좋아한다. 대체로 형편이 어려운 탈북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좌파는 통일보다 평화를 강조하던데.
 "나는 시베리아 벌판을 맨발로 걸어왔다. 분단이 정말 지긋지긋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10·4선언대로 하면 된다. 여권 들고 남북 자유 왕래부터 실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통일부 장관을 해야 할까.
 "어려운 자리다. 그래도 거대 담론보다는 민족의 삶을 고민하고 바꾸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대학생 임수경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 형을 선고받고 3년 5개월간 복역하다 가석방됐다. 그래도 방북 당시 소신 발언도 많이 했고, 그의 행동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북한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무슨 영문인지 북한에 줄곧 저자세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대북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판에 누가 통일부 장관이 되더라도 큰 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대북 정책의 변화는 할 말을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전직 통일부 장관 및 원로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전직 통일부 장관 및 원로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31년 전 6월 30일 충격적 평양행
"연락사무소 폭파, 통일 운동 조롱
분단 지긋지긋, 자유왕래 실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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