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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예잔혹상 폭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굿바이 엉클 톰』(원제 Uncle Tom)은 갤리오리 야코페티의 유작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라는 마지막 자막은 야코페티의 냉소 어린 유언처럼 보인다. 역사는 자유의지로 발전한다고 한다. 좋은 제도의 뒤 안에는 참혹한 역사의 비정이 숨어 있다. 숱한 생목숨의 피칠 끝에 한 사회는 변혁의 과정을 거친다.
『굿바이…』은 미국의 노예 잔혹 사다. 역사의 치부를 직시함은 고통스럽고, 그 치부가 아직도 완강하게 잔존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우리를 전율케 한다.
야코페티는 기자출신답게 화면 바깥에서 화면 속을 취재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있다. 『몬도가네』에서처럼 그는 상상력에 힘입는 작가 쪽보다는 현장에 뛰어드는 기자 쪽을 택했다. 엄혹한 현실 앞에서 작가의 상상력이란 무력하게 마련이다. 돼지우리가 한결 윗길인 노예선, 어린이를 한 다스로, 임신부와 건장한 생식기를 가진 사내를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노예시장의 참경은 우리의 상상력을 비웃는 충격으로 몰아간다.
게다가 자식들을 미끼로 탈주 흑인들을 유인해 학살하는 장면,「노예생산농장」에서의 야수적 사육과 강제생식장면은 보는 이들의 눈을 감게 만든다.
사실의 비정 만큼이나 야코페티는 일체의 감상을 배제하고 비정하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그러나 야코페티로서도 참을 수 없었던지 그답지 않게 영화후반에서 그만 흥분하고 만다.
『인간은 운명에 매인 동물, 그 벽을 넘으려고 하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머리를 쓰는 게 훨씬 낫다』며 자족하는 요즘 소시민 같은 혹인 구두수선공에게 야코페티는 『너는 민족도 자존심도 없냐』고 일갈한다.
노예제도 당시 실패했던 백인살해 사건과 70년대의 미국을 급격히 대비시키면서 상상 속에서의 백인살해 장면을 마무리로 넣은 것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보다는 오히려 입맛을 쓰게 한다. 백인들은 교회로 모여 현세의 행복을 구가하고 노예들은 듣도 보도 못한 십자가 앞에서 온몸을 뒤틀며 현실을 잊고자했다.
이 고통의 몸부림 속에서 나왔다는 재즈와 블루스와 솔에 오늘날 백인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며 아이러니다·<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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