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국정감사는 좋은 무대다. 너나없이 날 선 질의로 지적 매력을 뽐내고, 피감기관장을 쩔쩔매게 하는 장면을 그린다.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 무대라고 다를 바 없었다. 너도나도 ‘한 방’을 노렸는데, 그 한 방이라는 건 대개 이런 식이었다.
현장에서
◆“한 대 칠까?”=지난 2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장에선 한 정치인의 주먹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종합감사가 진행되던 중에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이 사람이 정말, 한 대 쳐 버릴까”라며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원욱 과방위원장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인 것이다. 두 사람은 질의시간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이 위원장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 사람이”라고 소리 지르며 박 의원 쪽으로 다가오자 박 의원이 벌떡 일어나 맞대응한 것이다. 이런 말다툼도 오갔다.
▶이=“여태까지 얼마나 배려를 해줬는데, 질문하세요. 질문해.”
▶박=“반말을 해? 똑바로 하세요. 아이 XX, 위원장이라고 진짜 더러워서.”
▶이=“야, 박성중! 너 보이는 게 없어?”
▶박=“‘야’라니, 이 건방진 나이도 어린 XX가.”
이후 이 위원장은 의사봉을 거칠게 내려친 뒤 바닥에 던지며 감사중지를 선포했다. 피감기관장인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었고, 국회 속기사는 귀를 막았다.
◆“위원장!” “왜!”=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국감에선 민주당 소속 윤호중 위원장과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 사이에 설전이 있었다. 김 의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휴가 관련 자료를 민홍철(국회 국방위원장) 민주당 의원실에만 제출하고 야당에는 안 줬다”는 취지로 서욱 국방부 장관을 몰아세우자 윤 위원장은 “생각을 좀 입체적으로 하라”고 다그쳤다. ‘열 받은’ 김 의원이 윤 위원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 말다툼으로 번졌다.
▶윤=“김도읍 간사. 김도읍 간사.”
▶김=“….”
▶윤=“이제 불러도 대답을 안 해요? 김도읍 간사. 위원장에게 사과하라는 겁니까?”
김 의원의 사과 요구에 윤 위원장은 “국방위원회에서 한 서면질의에 대해 답변한 것이라 (법사위 국감에서) 왜 자료 안 주냐고 하는 건 격이 안 맞다. 제대로 설명하면 좀 알아들으라”고 호통쳤다. 그러자 김 의원이 맞받았다.
▶김=“위원장.”
▶윤=“왜.”
▶김=“왜?”
▶윤=“왜.”
▶김=“위원장.”
▶윤=“왜 그래요!”
▶김=“그거(서류 제출 여부)는 국방부가 답변할 얘기에요.”
결국 윤 위원장이 서 장관에게 “김 의원에 자료 제출을 해 달라”고 말하면서 일단락됐다.
◆역공당한 의혹 제기=지난 22일 법사위의 대검찰청 국감 땐 신동근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사단”이라고 주장하며 전·현직 검사들의 이름이 적힌 인물관계도를 화면에 띄웠다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항의를 받았다. 신 의원은 “솔직히 얘기해서 이분들 한동훈 밑으로 해서 다 윤석열 사단 아니냐”고 물었는데, 정작 윤 총장의 답변은 듣지도 않은 채 발언만 이어갔다. 이윽고 질의시간 초과로 신 의원의 마이크가 꺼지자 윤 총장은 “아니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면 답을 할 기회를 주시고, 의원님이 그냥 말씀하실 거면 저한테 묻지 마시라”고 맞받았다. 신 의원이 “반박 있으면 해보라”고 하자 윤 총장은 “지금 이 도표를 보니까 ‘1987’ 영화가 생각난다, 이게 뭐냐. 외람된 말씀이지만 어느 정당 정치인이 부패에 연루되면 당 대표까지 책임져야 하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교통부 종합감사 땐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이 인물관계도를 띄웠다. 골프장 입찰과 관련해 같은 김현미 장관과 같은 전주 출신의 이상직 무소속 의원, 구본환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사이 “권력형 게이트가 의심된다”면서다. 김 장관은 곧장 “이게 게이트라는 이유는 무엇이고 근거는 뭐냐” “의원님은 의원님 지역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의혹 당사자가 되는 거냐”고 반박했다. 정 의원이 “(이 의원과)누나, 동생 하는 사이고”라고 하자 김 장관은 “저와 누나, 동생이라고 하는 우리 당 의원님들이 줄을 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상임위를 제외하곤 26일로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역대 최악이란 평가의 20대 국회가 끝나고, 새 얼굴들이 대거 들어온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였던 까닭에 일말의 기대들이 있었다. 하지만 블랙코미디 몇 장면만을 남긴 채 무대는 끝났다. “정치는 4류”라던 한 기업인의 탄식 뒤 무려 세기(世紀)가 바뀌었지만, 지금 보면 그의 평가가 되려 후했던 게 아닐까 한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