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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재영의 이코노믹스

머리 가려운데 발바닥 긁는 주택정책에서 벗어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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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택정책, 미신을 떨쳐라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서울과 수도권에서 2014년까지만 해도 “돈 없어서 집 못 산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주택경기가 돌아서고 2018년 이후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껏 달아오른 주택시장의 키워드는 서울, 수도권, 세종시, 새 아파트, 재건축, 역세권 등이다. 이에 따른 문제는 임대료 폭등보다는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살고싶은 집 좇는 꿈을 투기로 몰고 #부동산도 자산이라는 본질을 외면 #정작 당국자들 행동 달라 문제 악화 #결국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만 붕괴

정부는 주택시장을 선제적으로 제압하려고 세제·금융을 비롯해 강력한 규제를 빈번하게 내놓았다. 그러나 문제를 풀기는커녕 시장 혼란과 국민 불만을 가중해왔다.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무더기의 미신들이 정책 담당자들의 눈을 가리면서다.

첫째, 등 떠밀려 공급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주택은 부족하지 않다’고 믿는 미신이다. 국토부 홍보자료는 주택보급률 100%라는 수치를 근거로 공급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주택보급률은 가구 수와 주택 수의 비교일 뿐, 국민이 살고 싶어하는 집이 충분한가를 측정하지 못한다. 빠져나오고 싶은 반지하 방, 40년이 넘은 연립주택, 녹물이 나오는 10평대 아파트가 요즘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정부는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머리가 가려운데 발바닥만 긁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둘째 미신은 투기는 악이며, 다주택자는 억제되어야 할 대표적인 투기세력이라는 정부의 주장이다. 투기 억제로 가격을 잡는다는 접근법은 1960년대 이래 한결같이 실패했다. 부동산을 부의 증식 수단으로 보지 말라는 주장은 부동산이 자산이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앞 못 보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국민이 정권 핵심 인사들에 대해 분노한 이유도 ‘내로남불’ ‘말 따로 행동 따로’이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믿지도, 지키지도 않는 사이비 도덕률을 왜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는 걸까?

국민의 재산가치 낮추는 비정상 정책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시기마다 ‘투기’의 정의가 달랐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다주택자가 주로 타깃이다. 그러나 다주택자를 다른 말로 하면 임대주택 공급자다. 다주택자와 다가구 소유자들은 전 가구 셋 중 하나에 임대주택을 제공한다. 이 엄청난 물량을 정부가 대신하려면 수십 년의 세월과 수백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다주택자를 핍박하기보다 정부 할 일을 대신해주는 데 대해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셋째, ‘우리나라의 부동산 세금이 너무 낮다’거나 ‘세금을 올려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착각이다. 한국의 재산 과세 부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상위권이다. 재산 과세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양도소득세 부담도 높다. 다주택자는 구매력 증가 없는 명목소득에도 중과세가 부과된다. 정부는 내년에 세율을 더 올릴 테니 지금 집을 팔라고 강요하지만, 그 출구는 너무 높고 좁다.

그래도 가격만 잡으면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세금을 매겨 자산가격을 낮추면 자산의 미래소득을 정부가 빼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과 한 개를 반 조각으로 잘라내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같다. 도대체 국민의 재산 가치를 낮추는 것을 정상적인 정책목표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주택가격은 수많은 요인에 의해 결정되며 조세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시중 유동성이나 지역별 수급 같은 요인을 그대로 두고 세금만으로 주택가격을 잡기는 어렵다. 더구나 세 부담이 올라가면 장기적으로 주택공급을 위축시킨다.

안정된 주거는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이지만, 주택은 매우 비싸다. 누구나 꼭 필요로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상반된 특성이 어디서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주택정책의 기조는 대개 비슷하다. 즉,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택정책의 기본 목표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국민도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를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이다. 중산층에 저렴한 분양주택을 공급하되 금융이나 세제 혜택으로 지원한다. 고소득층은 지원이 불필요하지만 간섭하지도 않는다.

주택정책은 저소득층 주거안정에 쏟아야

OECD 국가들의 GDP대비 재산과세 비중

OECD 국가들의 GDP대비 재산과세 비중

이런 계층별 맞춤형 주택정책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기존 정책은 대폭 수정돼야 한다.

첫째는 재건축·재개발을 촉진해 시장이 원하는 주택공급을 늘리는 일이다. 8·4 공급대책도 재건축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듯하나 조합원들의 이익을 줄이기 위해 공공주도, 임대주택 공급 같은 사족을 끼워 넣고 초과이익부담금이나 분양가상한제 등 걸림돌은 그대로 두었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이 스스로 주거여건과 도시환경을 개선하려는데 왜 자꾸 장애물을 설치하나? 참여자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면 어떤 사업도 진행되지 않는다.

둘째, 재건축·재개발로 다 수용하지 못하는 주택 수요를 위해 3기 신도시 등 서울 외곽의 개발을 통한 저렴한 주택의 공급도 필요하다. 외곽지역의 도심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수도권 광역교통망과 양질의 육아 및 교육환경이 필수적이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생활여건을 개선해 외곽지역의 주거 만족도를 높여야 서울의 수요압력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이 2017년 12·13 대책 수준으로 복귀해야 한다. 정부를 믿고 많은 투자를 한 사람들을 갑자기 갭 투자라고 매도하면서 세제와 규제를 강화한 것은 약속 위반이다. 게다가 임대차 3법으로 임대주택, 특히 전세가 줄어들고 보증금이 오르는 게 이론적 가능성을 넘어 당장의 현실이 됐다. 정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 잘 굴러가던 민간 임대시장을 짓뭉개면서 혈세를 들여 중형 공공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제안이 나오는 것은 난센스다.

넷째, 부동산감독원 설립 추진과 다주택 공직자의 강제 매각 등 비이성적인 움직임을 중단해야 한다.기존의 범정부 대응반의 실적이 미미한 것을 볼 때, 부동산감독원에 어떤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세청·수사기관 등이 일상 업무의 일환으로 위법 행위를 단속하면 될 것이다.

또 부동산 정책의 투명성·책임성이 강화돼야 한다. 최소한 주거정책심의위원회의 회의록을 공개하고, 부동산 통계를 일신하며,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지우기 전에 정책효과와 부작용을 반드시 따져보기 바란다.

헨리 조지도 울고 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헨리 조지

헨리 조지

정부가 다주택자를 주 타깃으로 세금이나 대출·기타 수단을 총동원해 압박하고, 특히 세금부담을 못 이겨 집을 팔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부동산세 부담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까지 시가의 20∼30%에 불과했던 과표가 현실화되었고, 부동산 정보 투명성이 높아졌으며, 종부세가 도입되는 등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산 과세 부담이 미국·일본보다도 높아졌다. 2018년 현재 한국의 재산 과세 부담은 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높다.

혹자는 부동산 중과세가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의 처방을 따르는 ‘족보 있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조지의 사상에 대한 왜곡이자 모욕이다. 조지는 문명의 진보가 개인의 노력·창의,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유재산제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본 축적을 저해하는 어떤 세금도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용하자면, “세금은 과세대상의 품목을 제거할 목적으로 또는 줄이기 위할 목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나 군에서는 개의 숫자가 많아지면 개를 없애기 위해 개에게 세금을 부과한다. 그렇다면 주택은 없애기를 바라지 않으면서 왜 세금을 부과하나? (중략) 주택에 대한 세금은 틀림없이 주택의 수요를 줄어들게 할 것이다. (중략) 영국의 경우, 오래된 집에 ‘창문세’라는 것이 부과된다. 이 창문세는 오늘날 프랑스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센서스 보고에 따르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창문을 전혀 달지 않는 집이 20만 가구에 달한다고 한다. (중략) 건물에 과세하라. 그러면 건물의 수효도 줄어들고 모양도 누추해질 것이다. 농장에 과세하시오. 그러면 농장은 더욱 줄어들고 더욱 황량해질 것이다. 자본에 과세하시오. 그러면 자본은 줄어들 것이다.”

서부 개척 시대, 토지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그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논쟁을 일으켰던 헨리 조지. 그가 지금 한국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두 손 들고 울고 갈 것이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서울대와 미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국토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치면서 한국의 부동산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해 왔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