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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공연장 아닌 저잣거리로 나선 마이미스트 유진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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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마이미스트 유진규

권혁재의 사람사진/ 마이미스트 유진규

지난 9월, 마이미스트(Mimist) 유진규씨로부터 보도자료를 받았다.
춘천에서 ‘요선시장 코로나땡 동그랑땡’ 공연한다는 자료였다.
공연장이 아니라 시장에서 한다는 게 남달랐다.
더구나 관객 참여형 공연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관객은 방역수칙에 따라 3분에 한 명씩 입장한다.
관객은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마임, 영상, 미술작품 등을 관람한다.
공연자들은 방호복을 입고 시장을 돌아다닌다.
시장 안에서 방호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동그랑땡을 굽는다.
여기서 원하는 관객에게 막걸리 한잔 내준다.
사실 코로나19로 기존 공연 방식이 중단된 지금,
그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기획한 공연이었다.
중단된 공연장, 오갈 데 없는 관객을 사라져 가는 시장으로 불러내
함께 어우러지자는 공연, ‘마이미스트 유진규’가 여는 새길이었다.
1세대 마이미스트인 그는 1972년 국내 최초 무언극 ‘첫 야행’으로 시작했다.
1989년부터 25년간 이끈 춘천 마임 축제는 세계 3대 마임 축제가 됐다.
그가 몸짓으로 열어온 길은 늘 새길이자, 우리나라 마임의 역사가 됐다.
사실 그는 대학 시절 수의학과 학생이었다.
지난해 만나 불쑥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몸짓의 길을 택한 이유가 뭡니까?”
“먼저 내 안의 자유를 찾기 위해 연극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내 몸짓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연극에서 마임으로 바꾼 겁니다.”
몸짓으로 이야기하려 시작한 50여년 마임, 우여곡절도 숱했다.
교통사고와 뇌종양으로 더는 몸짓을 할 수 없을 위기에 이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엿이 돌아와 몸짓으로 세상에 이야기했다.
코로나19로 비롯된 공연 위기에 그는 또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 있다.
그 돌파구는 공연장이 아닌 삶터에서 관객과 어우러지는 몸짓인 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