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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분산원장이 아니라 공유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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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김문수’s Token Biz] 암호화폐는 가치의 혼란을 일으키지만, 분산원장기술(DLT: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은 가치중립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암호화폐는 규제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분산원장기술은 육성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암호화폐는 투기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하지만 분산원장기술은 육성해야 할 기술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분산원장 기술을 채택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개발한다고 하고, 정부는 분산원장기술 연구를 주도해 국제표준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하면 보안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명확하지 않은 개념은 잘못된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산원장보다 공유원장이 정확한 표현

분산과 공유는 명확히 다른 단어입니다. 따라서 분산원장과 공유원장도 같은 단어일 수 없습니다. 분산은 쪼개어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의 직원들을 분산 배치한다고 하면 전체 직원을 한 곳에 배치하지 않고 여러 개의 사무실을 마련하여 인력을 나눠 배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분산 배치한다고 해서 전체 직원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산을 잘 활용하면 일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선조들의 두레와 품앗이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00이라는 크기의 일을 10명이 나눠 한다면 각자 10씩 맡아 보다 쉽게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일을 쪼개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10명이 모두 각자 100이라는 일을 맡아 중복(redundancy)해서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효율은커녕 전체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100*10=1000의 노력이 투입됩니다. 참여자 전원이 똑같은 효력을 가진 원장(장부)의 원본을 공유하여 각자 중복해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은 처리해야 할 금융거래 원장을 쪼개어 나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접근(분산)이 아니라, 금융 거래 원장 전체를 각자 중복해서 처리하기 때문에 생산성 측면에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입니다.

#공유원장 관리에 생산일자를 붙인 것이 블록체인

그렇다면, 블록체인과 공유원장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블록체인은 공유원장을 관리하는 하나의 방법론입니다. 블록체인은 공유원장에 공동 오류 확인과 시간의 요소를 결합한 것입니다. 공동 오류 확인이 끝난 공유원장들을 정해진 확인 시각(timestamp)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생산일자를 붙여 관리하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은 약 10분 마다 생산일자를 붙이고 이더리움은 약 15초마다 생산일자를 붙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블록 생성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퍼블릭 블록체인,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도 원장을 공유하는 범위에 따라 모두에게 개방하는 ‘완전 공유원장’과 선택된 구성원들에게만 공유하는 ‘제한적 공유원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공유원장, 환상에서 현실로

명확한 개념을 잡으면 잘못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기업이 블록체인을 도입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과연 기업 내부의 정보 처리 시스템을 진정으로 공유하고 싶은지 스스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유의 범위를 대중 전체에게 할 것인지, 혹은 제한적으로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공유의 범위를 확대할수록 전체 시스템에 들어가는 비용은 빠르게 증가합니다. 블록체인은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국가 단위에서 블록체인을 전략을 수립할 때에도 한국형 블록체인 기술 개발을 통해 국제 표준을 주도하겠다고 목표를 잡기보다는, 사실상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은 비트코인ㆍ이더리움 등에서 한국이 어떠한 역할을 할 지에 대해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국제 표준은 단지 연구비의 규모가 아니라 공유의 힘에서 나옵니다. 테슬라는 보유한 특허를 모두 개방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표준을 차지했습니다. 오픈소스의 생태계를 기반으로 대체불가토큰(NFT, Non-Fungible Token), 비트코인을 이더리움 토큰 형식 ERC-20으로 감싸서 호환성을 높인 WBTC(Wrapped Bitcoin)와 같은 창의적인 개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규제를 최신화해야 합니다.

비트코인의 백서에는 블록체인(blockchain),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이라는 단어가 몇 번 등장할까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같은 데이터를 중복해서 검증하고 분산된 시각(distributed timestamp)마다 블록(block) 단위로 묶어서 고비용으로 처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결국 비싼 비용을 감당하고서라도 중앙형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공유하고 분산할수록 의사결정 비용은 증가합니다. 그리고 비싼 의사결정 비용을 감당하면서 도전하고자 하는 것은 거버넌스(governance)의 개혁, 즉 통치 방식의 개방입니다. 비트코인은 그것을 탈중앙화(decentralized)라고 부릅니다.

김문수 aSSIST 경영대학원 부총장 및 ABC MBA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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