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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가게 고양이였나, 만신창이 된 금감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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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언제나 금융소비자의 목소리에 기울이는 귀를/멈춰있지 않고 행동하는 두 발을/금융시장을 늘 지켜보는 두 눈을/금융소비자 한 분 한 분을 끌어안을 가슴을 지닌 금융 파수꾼, 우리는 금융감독원입니다.”

옵티머스 불똥…‘금융 검찰’의 굴욕 #금감원 출신, 옵티머스 연루 잇따라 #라임 사태 땐 팀장이 내부자료 빼내 #공모에서 사모로 감독중심 옮기고 #조직 내부 기강잡기에 더 힘썼어야

지난해 출간된 『금융감독원 20년사』 첫머리에 나오는 멋진 카피다. 하지만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로 각각 1조6000억원과 5000억원의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감독 당국도 머쓱하게 됐다. 돈을 날린 금융소비자는 울상이고 금융파수꾼의 눈과 발은 라임과 옵티머스가 아닌 애먼 곳을 향해 있었다.

한 마디로 금융감독의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금융위원장은 “사모펀드 규제 완화에 맞춰 금융감독의 인력 자원과 역량을 공모 펀드에서 사모 펀드로 금융감독의 무게중심을 옮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갑자기 특정상품에 몰리거나 통상적인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을 내세우는 상품이나 금융회사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감독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금융의 기본인 상식에 충실했다면 라임과 옵티머스의 이상 조짐을 당국이 파악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 임직원 행동 강령

금융감독원 임직원 행동 강령

감독 실패에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가 연루된 로비 의혹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금융감독 최고 기구로서 ‘금융 검찰’이란 별칭을 가진 금감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시장에선 영(令)도 서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3일 금융감독원 윤모 전 국장의 서울 성동구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알선수재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윤 전 국장은 2018년 3~4월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에게 펀드 수탁사인 하나은행 관계자 등 금융계 인사를 소개해주는 대가로 수천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은행 초급(고졸) 출신인 윤 전 국장은 1999년 은행·증권·보험감독원 등이 통합된 금감원으로 옮겼고, 지난해 6월 퇴직했다. 2012년 광주지원장을 끝으로 약 6년간 무보직 상태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윤 전 국장은 주로 은행과 신용관리기금 부서에서 일해 증권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에 옵티머스 관련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옵티머스 로비 의혹’을 받는 금감원 출신 인사는 윤 전 국장뿐 아니다. 금감원 전 수석조사역인 변모씨도 지목된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변씨는 옵티머스 펀드 자금이 흘러 들어간 해덕파워웨이 상근감사로 지난해 8월 선임됐다. 윤석호(구속 기소) 변호사의 아내인 이모 전 청와대 행정관이 사외이사로 일하던 때와 같은 시기다. 변씨는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 윤 변호사와 한양대 동문이다. 1996년 증권감독원 연구위원으로 입사해 2011년까지 파생상품총괄팀, 증권시장팀 등에서 일했고 현재 국내 한 대형 로펌의 수석전문위원으로 있다. 변씨는 지난 5월엔 옵티머스 부실을 검사하는 금감원 국장과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따뜻한 마음으로 봐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감원 직원의 비리 의혹은 ‘라임자산운용 사태’ 때도 반복됐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된 금감원 김모 팀장이 금감원 내부 검사 자료를 빼낸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그 대가로 김 팀장은 고향 친구인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37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 김 팀장은 지난달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000만원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금감원 직원의 잇따른 비리 의혹에 “악어와 악어새 관계”(대형 증권사 임원 A씨)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익명을 원한 은행 관계자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금감원이 독점적 권력 탓에 부패로 이어지는 모습”이라며 “사모펀드 판매와 관련해 금융회사에 징계를 내리고 있는데, ‘집안 단속’부터 신경 써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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