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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21개월 의료현장] 上. 수술의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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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개업 열풍 왜 부나
너도나도 돈되는 科 개업... 메스 버리고 감기환자 진료

서울 강남구의 동네의원은 의약분업 전인 2000년 상반기 5백31곳에서 현재 7백28곳으로 1백97곳(37%)이나 늘었다.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맞은편 대로변에는 무려 36곳의 성형외과가 몰려 있다. 5층 안팎 건물에 성형외과만 2~3곳이 입주해 있을 정도다.

반면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레지던트(전공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개업하겠다며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다. 흉부외과.일반외과.신경외과 등 소위 '칼잡이'과(科)는 지원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기형적인 개업 열풍과 병원의 의사 구인난, 그리고 기초 의료의 위기…. 2000년 7월 의약분업 실시 이후 생겨난 의료 왜곡 현상이다.

◇진료 부실=최근 A병원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환자가 다음날 새벽 호흡부전에 빠져 재수술을 받았으나 2주 후 사망했다.

이 병원 신경외과 B과장은 "레지던트가 없어 환자가 위급한 순간에 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없었다"며 "내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30분만 레지던트가 막아 주었으면 살릴 수도 있었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C병원 해부병리 전문의는 "레지던트가 있으면 같은 인체조직을 동시에 검사할 수 있으나 혼자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져 오진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방사선과 레지던트가 두명(정원은 8명)뿐인 D병원의 경우 현재 방사선 필름이 2백장이나 밀려 있다. 이 때문에 환자가 촬영 후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3주나 걸린다.

이 병원 레지던트는 "중병 환자의 필름은 두번 봐야 하나 시간에 쫓겨 한번밖에 못본다"고 말했다.

충북 E대학병원.경기도 F대학병원 등에는 성형외과가 없어졌다. 경기도 수원의 G병원과 부천의 H병원은 2~3명이던 안과 의사가 한명으로 줄어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E병원 관계자는 "성형외과가 없어지는 바람에 교통사고나 화상 환자가 오면 피부를 이식하거나 얼굴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업 열풍="최근 안과 의사 두명이 나가겠다고 해 한명만 겨우 설득해 주저앉혔어요. 또 지난해 개업한 소아과 의사 두명을 채우기 위해 채용 공고를 냈지만 응모자가 아예 없어 정부에 공보의(군 복무 의사)를 요청했을 정도입니다."

국립의료원 도중웅 원장의 얘기다.

지난해 대학병원 의사의 경우 10명 중 1.7명꼴로, 중소병원은 세명 중 한명이 병원을 떠났다. 이중 70%가 개업했다. 서울 I병원의 경우 여섯명의 의사 중 내과.정형외과를 포함해 전문의 네명이 한꺼번에 개업하는 바람에 원장이 진료에 매달리고 있다.

흉부외과는 폐암.심장병을, 일반외과는 위암.대장암을, 신경외과는 뇌종양.척추질환을 수술 또는 치료하는 핵심 과목이다. 문제는 이들 핵심 분야의 전문의마저 수술 칼을 버리고 개업한다는 점이다.

최근 주요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전문의나 레지던트들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속속 개업해 전공 분야가 아닌 일반 감기 환자를 보고 있다.

◇지원 양극화=올해 초 레지던트 선발 전형에서 ▶피부과 2.2▶성형외과 2▶안과 1.8▶이비인후과 1.6▶정형외과 1.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반면 해부병리 0.22,임상병리 0.35, 진단방사선 0.37, 흉부외과 0.4, 치료방사선 0.52, 일반외과는 0.83대1에 불과했다.

양극화 현상은 의약분업으로 더 심해지고 있다. 의약분업 후 이비인후과와 소아과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 수가(酬價)인상 덕을 상대적으로 많이 본 탓"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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