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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난 코리안 드림' 고쳐줍니다

중앙일보

입력

아파도 내색할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이들이 나섰다.
코리안 드림에 멍들고 있는, 저 건너편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것이다.

환자들이 불법체류자라 관계 당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결국 분당경찰서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하는 일이므로 문제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렇게 해서 분당보건소는 '현대판 소도(蘇塗)'가 됐다.


▶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분당의 무료 진료센터에서 봉사하는 전문의들. 왼쪽부터 박형섭ㆍ이광동ㆍ최윤근ㆍ백형익ㆍ백무현씨. [최승식 기자]

'불법 체류자'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외국인 근로자 24만여명. 그들에겐 출구가 없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몸이 아파도 내색할 수 없는 사람들.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갇힌 그들을 위해 마취과 전문의 최윤근(崔潤根.55)씨 등 의사 열여섯명이 나섰다.

이들은 고민한다. "숨막히는 그들에게 과연 비상구를 열어줄 수 있을까. 아픈 상처만큼 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이들 의사는 코리안 드림에 멍들고 있는, 저 건너편의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다.

주인공은 최윤근 포천중문의대 교수를 비롯해 백무현(白武鉉.45.성형외과) 전 중앙대 교수, 정연철(鄭然哲.46.안과) 전 건양대 교수와 마득문(馬得文.41.이비인후과)씨 등.

지난 10일 오후 2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보건소 2층 한방진료실.

"농장에서 나무를 옮기다 삐끗했다"며 방글라데시에서 온 살람(30)이 미간을 찡그리며 요통을 호소했다. 그는 소염제.진통제 등으로 치료를 받은 뒤 "고맙쑤미다. 땡큐! 땡큐 베리 마치"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매주 일요일 이곳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센터'로 탈바꿈한다.

의료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장비를 챙겨온다. 이들의 전공과목은 내과.정형외과.이비인후과.산부인과 등 10개. 이 정도면 제법 '종합병원'의 구색을 갖춘 셈이다.

의료진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약까지 지어준다. 비용은 이들과 후원인 20여명이 낸 돈으로 충당한다.

매주 다녀가는 외국인 환자는 20~30명. 인터넷(www.fwclinic.com)에서도 진료예약을 할 수 있다. 이들은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의사가 늘면 토요일 또는 평일에도 진료를 할 계획이다.

1997년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온 金모(65.여)씨는 진료 중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혹시 경찰이 들이닥쳐 날 내쫓으면 어찌 합메까?"

金씨는 4년 전 교통사고로 무릎뼈가 부러졌다. 당시 그녀는 병원으로 옮겨져 깁스를 하자마자 병원에서 도망쳐 나왔다. 경찰에 적발돼 본국으로 추방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깁스를 직접 쇠톱으로 잘라냈었죠. 두통.고혈압에 시달리는 나를 도와주는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의사들이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학교 다닐 때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실천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했습니다. 처음엔 좀 쑥스럽기도 했지만…."

이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묶은 선서의 구절은 '인종.종교.국적.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는 대목이었다.

가장 선배격인 崔씨가 지난해 4월에 아이디어를 냈다. 이에 서울대 의대 후배들과 동료.지인들이 흔쾌하게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白씨는 "의료혜택을 가장 못받는 소외계층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돼 기쁘다"며 동참했다.

또 鄭씨는 "돈 벌려고 한국에 와서 고생만 하고 임금을 떼이거나 사기를 당하는 사연을 들으며 안타까워했는데 이번 기회에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싶다"고 했다.

馬씨는 "존경하는 선배들이 하는 일인데 뭔들 함께 못하겠느냐"며 "많은 환자에게 혜택이 고루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崔씨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진료소로 쓸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성남시청에 "남는 관공서 자리나 쓸만한 터가 없겠느냐"고 문의했다.

종교단체 등에서도 장소를 빌려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물리치료 장비와 각종 검사 기구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분당보건소에서 진료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었다. 진료할 환자들이 불법체류자라 관계 당국의 협조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결국 당국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하는 일이므로 문제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렇게 해서 분당보건소는 '현대판 소도(蘇塗)'가 됐다. 드디어 지난 1월 17일 첫 진료를 시작했다.

"세월이 참 빠르군요. 20여년 전 제가 아메리칸 드림의 쓴맛에 좌절했는데, 이젠 이 땅에서 코리안 드림의 허상(虛像)에 짓눌린 외국인들을 보게 되다니…."

崔씨는 창밖을 쳐다보며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선진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뉴저지주립대 부속병원.뉴욕주립대 부속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를 마쳤다.

남들보다 두배 이상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하지만 늘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자유와 평등의 사회로만 여겼던 미국에 인종 차별은 엄연히 존재했다. 인기가 높은 진료과목은 대부분 미국인들의 차지였다. 그곳에선 그 역시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崔씨는 80년 버지니아주 포츠마우스시에서 통증 전문의로 개업했다. 당시 그곳에 살던 한국인은 1만여명. 그 가운데 3천여명이 불법 체류자였다.

그는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던 그들은 한결같이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면 번 돈을 모두 날리고 거지꼴로 쫓겨나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회고했다.

요즘 의료진은 가슴이 설렌다. 지난 1월 이곳을 다녀간 몽골 여인 시트리(28)가 오는 5월 26일께 아기를 낳기 때문이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진료받던 그녀는 출산 4개월을 앞두고 찾아와 "병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울먹였다. 의료진이 애쓴 덕분에 그녀는 분당 차병원에서 무료로 분만할 수 있게 됐다.

의료진은 "새 생명의 탄생이 우리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간극을 메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들에게 국가적.인도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들이 따뜻한 대접을 받고 귀국하면 평생 '한국=따뜻함'이라는 생각을 간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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