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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동맹 신뢰 갉아먹은 이수혁, 주미 대사 자격 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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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동맹은 국가의 운명을 상호 의탁하는 관계다. 동맹국 안보에 위협요인이 발생하면 이를 자국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의무적으로 도와주는 관계다. 조약이란 법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서로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원초적 신뢰가 있어야 동맹은 유지될 수 있다.

주재국의 불신을 자초하는 발언 잇따라 #미 국무부 장문의 반박…불쾌감 드러내

이수혁 주미 대사가 동맹의 신뢰를 깎아먹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이 대사는 12일 국정감사에서 “70년 전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사랑하지도 않는데 동맹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거나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할 것”이란 말도 했다.

그러자 미국 국무부가 장문의 입장문을 내고 이 대사의 발언에 반박했다. 한 나라 정부가 자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 그것도 동맹국 대사의 발언을 문제 삼아 공식 반박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대사의 발언이 동맹국 간에 지켜야 할 금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 대사는 지난 6월에도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이제는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때도 미국 국무부는 “한국은 수십 년 전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고 반박했다. 이 대사의 잇따른 발언에 실망을 넘어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이수혁 대사가 주미 대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의지와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 모든 나라의 대사는 주재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 그래야만 주재국과 원활한 의사소통 창구를 구축하고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본국의 입장을 대변하며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사의 발언은 스스로 그 신뢰를 갉아먹거나 걷어차는 수준의 발언이다.

설령 이 대사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에 대한 분명한 소신과 신념을 갖고 있더라도 주재국에서의 표현 방식에는 극도의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사건건 주재국 정부와 마찰을 일으킬 줄 알면서도 문제의 발언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외교활동을 하러 간 대사로서의 본분을 잊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한·미 동맹의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북한의 도발 및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 전략의 차이 등에서 빚어진 불협화음과 함께 정부 고위층의 부적절한 언행도 이를 부추겨 온 것이 사실이다. 설사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오해를 풀고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이 바로 주미 대사다. 그런 그가 앞장서서 한·미 간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동맹관계를 맺은 지 70여 년 만에 초유의 일이다. 미국 국무부의 이례적인 반박문은 이수혁 대사에 대한 신뢰를 접었음을 보여주는 증빙이다. 그런 이 대사가 미국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일임을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