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기찬의 인프라

"색안경 금지""육감 조심" 공기업 정규직화 뒤, 갑질 판친다

중앙일보

입력 2020.10.06 00:32

업데이트 2020.10.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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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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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육감이나 유혹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색안경(선글라스)은 불미스러운 물품이다. 착용하거나 휴대하지 마라’ ‘사상이 건전해야 한다’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라’….

자회사 직원 교체, 징계 마음대로
머리 염색, 사상까지 따지며 옥좨

대표 10명 중 6명 공기업 낙하산
공기업 직원이 대표이사 겸직해
사실상 공기업 소속 일개 부서 취급
모회사와만 거래…위장도급 논란

설립 근거도 없어 정책 바뀌면
유령 회사 전락 우려…실직 위험

벌어들은 용역비 지출조차 통제
자회사 경영진조차 "지속가능성 의문"

"정규직화 명분으로 공공부문에서
위장도급·갑질·차별 고착화 우려"

공기업이 자회사에 내린 복무규율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설립한 자회사에 대한 공기업·기관의 갑질이 도를 넘고 있다. 정규직화 이전인 용역업체를 대할 때보다 더 심하다. 독립 법인으로 대접을 받는 곳은 드물다.

이런 사실은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노동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자회사 운영 실태 조사」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 의뢰로 49개 모회사(공기업·공공기관)의 57개 자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비정규직 제로선언에 따라 추진된 자회사의 운영실태가 낱낱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속전속결로 정규직화를 밀어붙인 탓에 법적 근거조차 없는 자회사가 수두룩했다. 자회사 10곳 중 세 곳(31.6%)이 법령이나 모회사의 정관에 근거가 없었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설립됐다. 심지어 법령에 따라 설립된 자회사(45.6%)도 모회사의 관련 법이 아닌 상법 같은 엉뚱한 법에 근거했다. 한국수자원공사 산하 자회사가 그런 경우다.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는 “설립 근거가 없는 회사는 정부 정책이 바뀌기라도 하면 유령회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고용 안정은커녕 대량 실직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회사의 평균 직원 수는 654명이다. 100명 미만의 소규모 자회사가 17.5%(10개)나 됐다. 자회사 대표이사 10명 중 6명은 모회사인 공기업·기관 임직원 출신이다, 공무원도 가세했다. 낙하산이 판을 치는 셈이다. 심지어 14%의 자회사에선 모회사 직원이 대표이사를 겸하는 겸직 체제다. 자회사가 회사이기보다 모회사의 별도의 부서취급을 받는 셈이다. 모회사에서 파견된 대표이사도 19.3%에 달했다. 이사도 마찬가지다. 자회사 이사 중 모회사 파견이 3.3%, 겸직인 경우가 75.4%에 달했다. 대표이사만 있고 아예 이사가 없는 자회사도 15곳이나 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래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자회사에 대한 부당 불공정 사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자회사에 대한 부당 불공정 사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실제로 모회사하고만 거래하는 자회사가 84.2%에 달했다. 목숨 줄을 공기업·기관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인사·경영권이 독립된 전문기업으로 자회사가 성장하길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기관이나 회사와도 거래하는 자회사는 15.8%에 그쳤다. 이런 기업은 정규직 전환 이전에 설립된 자회사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말이 공공부문 자회사이지 예전 용역업체 때 당했던 갑질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심해졌다. 조사 결과 자회사의 경영·인사권을 흔드는 사례가 발견된 기관이 35곳에 달했다. 부당한 업무지시 31곳, 노동3권 제약 28곳, 과도한 복무규율 27곳 등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모회사가 자회사를 통제와 감독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소위 ‘갑을관계’였다고 할 기존 용역 계약의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당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게 연구원의 판단이다.

갑질의 정도도 심각하다. 직원 교체를 강요하거나 자회사 직원의 인적사항과 인사자료 제출까지 강요했다. 자회사 직원의 전출조차 모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연차휴가나 대체휴무, 휴일수당을 통제하는 곳도 있었다. 용역비 지급을 마음대로 유보할 수 있게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모회사가 자회사 직원에게 지시하고, 이행토록 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불법파견·위장도급을 공식화하는 셈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자회사 직원의 불법파견이 발견될 시 해당 노동자를 퇴출하여야 한다거나 자회사가 벌어들인 용역대가를 지출하는데도 모회사가 통제를 가하는 등 비상식적인 경우도 확인됐다”고 했다.

대표이사 임용 직전 직업 비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표이사 임용 직전 직업 비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특히 자회사 직원의 복무규율이라며 사상의 건전성을 따지고, 잡담과 껌 씹기 금지 같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회사와 자회사 간에 용역 계약서를 놓고 해석이 다르면 무조건 모회사의 뜻을 따르도록 했다. 휴일에 일을 시키는 것도 모회사의 권한이라고 명시한 곳도 있었다. 자회사 직원이 공기업·기관의 임시직 대접을 받는 꼴이다.

조사에 응한 자회사 경영진조차 자회사의 지속가능성에 우려를 표할 정도다. “정부 정책이 변화한다면 수의계약체계가 유지될 수 있는지, 이후 다시 용역업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불안해한다”고 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실태가 이 정도라면 정부는 정규직화 실적만 챙긴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에 대한 위장도급·갑질·차별 이슈가 정규직화라는 이름으로 공공부문에서 고착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런 갑을 관행을 없애기 위해 법령을 정비해 설립근거를 명확히 할 것을 제안했다. 또 모회사 겸직이나 파견인력을 철수시키고,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회사 정관을 개정하도록 주문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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