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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인 대가 죽음뿐인가” 집행 멈춘 사형수 60명 ‘죽은 삶’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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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30일. 이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날이다. 이후 20년 넘게 사형 집행은 멈춰있다.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되었지만, 사형 확정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김대근 연구위원(법학 박사)이 반년 동안 이들을 만났다.

2019년 7월 기준 전국에는 60명의 사형확정자가 살아있다. 이 중 군 교도소에 있는 4명을 제외하고, 민간 교도소에 있는 56명 중 인터뷰에 동의한 32명을 김 박사가 만났다. 김 박사는 그중 31명의 사례를 엮어 〈사형 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이란 연구보고서도 냈다. 그는 왜 ‘죽음이 예정된 삶’을 사는 사형 확정자들을 찾아 나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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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일문일답

사형 확정자들은 언제, 어디서 만난 건가
작년(2019년) 6월부터 12월까지 전국의 교도소와 구치소를 돌며 만났다. 서울구치소에서 6명, 부산구치소에서 3명, 대전교도소에서 7명, 광주교도소 10명, 대구교도소 6명을 각각 두 번씩 면담했다.
사형 확정자들은 대부분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면담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연구원 2명과 사형확정자 1명, 교도관이 있는 방에서 만났다. 무섭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악수할 때도 있고 끌어안기도 했다. 그 안에 갇혀서 무슨 나쁜 일을 벌일 수 있을까 했다. 대개는 오랜 수감생활에 나이 든 수형자일뿐이다.
왜 하필 사형 확정자인가
우리나라에 사형 확정자에 대한 경험 조사 연구는 하나도 없다. 사형 확정자라 하면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접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범죄의 잔혹성을 몸서리치며 듣고, 도대체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은 누굴까. 어떻게 생겼고 어떤 생각을 하고 다닐까 생각하고. 당연히 이어지는 궁금증들이다. 동시에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있는 사람의 삶을 관찰하고 연구해서 얻게 되는 인간 본연에 대한 통찰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제도에 대한 고민도 들 것 같은데
사형 확정자들은 다양한 인간 존재 중 경계에 선 사람들이자 극단까지 가 본 사람들이다. 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위치와 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쁜 사람들이지만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고, 어찌 보면 인권의 가장 사각지대에 있기도 하다. 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 인권 전반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키고 교정이라는 제도와 형벌의 목적을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해외는 어떤가
유럽 같은 경우 사형 폐지가 됐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사형제도 폐지나 유지에 대해 유럽과 미국만 비교해도 고민해볼 수 있다. 미국은 현재 진행 중인 제도에 대해 비교분석을 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장이라면, 유럽은 사형 폐지 이후 대체 형벌에 대한 효과성을 검증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장인 셈이다.
사형 확정자가 보내온 편지 [김대근 연구위원 제공]

사형 확정자가 보내온 편지 [김대근 연구위원 제공]

김 박사와 대화를 나누던 중 김 박사가 서류봉투를 가져왔다. 지난해 면담을 한 사형확정자 최모씨가 김 박사 사무실로 보내온 편지였다. 서류봉투 안에는 정갈한 글씨로 쓰인 3장의 편지와 그림 3장이 담겨 있었다.

한 사형 확정자가 그려서 보낸 그림 [김대근 연구위원 제공]

한 사형 확정자가 그려서 보낸 그림 [김대근 연구위원 제공]

최씨 외에도 김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온 사형 확정자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다른 확정자는 김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억울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미성년자인 친척을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확정받았다. 확정자들이 보낸 편지에는 유독 ‘종교’와 관련한 말들이 많았다.

사형확정자들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인가
아주 중요한 문제다. 통상 기독교, 불교, 천주교 세 개의 종교를 사형 확정자들이 가장 많이 믿는다. 종교를 통해 뉘우치거나 쉽게 위안을 받기도 한다.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터무니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가 면담하면서 종교를 믿는 사형 확정자에게 “천국 갈까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다. 어떤 사람은 “천국 간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하고. 오히려 자기가 죽인 사람이 천국 갔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종교에 기대 자신의 죄를 회피하는 게 아닐까
‘사람을 여러 명 죽인 사람에 대해 그 죄의 대가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따라오는 건 맞다. 하지만 누구나 죽기 전에 종교를 가질 수 있고, 누구든 신을 믿거나 의존할 자유는 있는 것이다. 물론 마치 영화 '밀양'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신에 빗대 자기가 자신을 구원하는, 회개로 바뀌었다는 걸 어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형 확정자에게 피해자에 대해 언급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울며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범행을 복기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뉴스나 신문을 통해 살인이나 강간 같은 사건을 접하면 민망해하기도 한다. 동료들과 TV를 보다가도 그런 소식이 나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이들도 있다. 자기가 범행을 저지른 날에 대해서 한 달 전부터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달 동안 구토를 하거나 식사를 잘 못 한다거나. 코에서 피 냄새가 계속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형 확정자들이 집행을 기다리며 정신 감정도 받는가
그런 활동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교정 시설에서의 프로그램은 이 사람이 다시 사회로 복귀했을 때를 전제로 교화를 진행한다. 하지만 사형 확정자들은 사회로의 복귀 예정이 없는 사람들 아닌가.  
사형 확정자보다 범죄 피해자들의 인권을 조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당연히 나쁜 사람들이다. 하지만 범죄와 형벌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사형 확정자들만의 인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연구 역시 진행되고 있다. 사형 확정자들에 대한 연구가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런 질문은 연구를 진행하며 저 스스로 매일 물은 것이기도 하다.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민이다. 형벌의 목적이 복수나 응보만은 아니다. 열댓 명씩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대가가 죽음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가 사람을 제도적으로 죽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또 확실한 건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 효과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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