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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법엔 “조난 인명 구조 의무”…국제사회 용인 못할 만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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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은 국제법과 규범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전문가들은 24일 지적했다.

전시라도 비무장 민간인 사살 금지 #“구조는커녕 시신까지 훼손 경악” #북한 반인도범죄 도마 오를 듯

군에 따르면 북한은 작은 부유물을 잡고 해상에 떠 있던 이씨를 선상으로 구조하지도 않은 채 최소 6시간 이상 방치했고, 사살한 뒤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였다.

하지만 해양 질서에 대한 헌법으로 불리는 ‘유엔해양법협약’ 98조는 “모든 국가는 자국 국적 선박의 선장에게 ‘바다에서 발견된 실종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지원을 제공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돼 있다. 구조를 위한 노력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것이다. “선박에 중대한 위험이 되지 않는 한”이란 단서가 달려 있는데, 부유물을 잡고 기진맥진해 바다 위에 떠 있던 이씨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북한은 유엔해양법협약을 비준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할 때는 유엔 관련 회의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박사는 “북한의 행태는 선박의 구조 의무를 넘어 인권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해상이 아니라 북측 영해에 들어갔더라도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사살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어떤 경우든 금지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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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이 아니라 ‘정전’ 상태인 한반도의 특수한 법적 상황을 고려해도 북한의 만행은 국제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전시라 해도 민간인을 함부로 사살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1949년 발효)에 담겨 있다. 협약 3조는 “적대 행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경우에 있어 불리한 차별 없이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돼 있다.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도 열거했는데 ‘생명 및 신체에 대한 폭행, 특히 모든 종류의 살인, 상해, 학대 및 고문’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씨를 총기로 사살한 것도 모자라 시신을 불태워 훼손한 것은 금지행위에 해당한다.

이번 사건으로 북한 정권의 인권 의식 수준이 다시 확인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 내에서 정권에 의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반인도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가 자행되고 있다고 규정했고,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권고했다. 특히 반인도 범죄를 규정한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로마 규정’ 제7조 1항은 ‘살해’와 ‘비인도적 행위’를 반인도 범죄의 구체적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유정·김다영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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