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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베체트 환우회 "희망을 엮어요"

중앙일보

입력

"처음에 입이 헐었을 땐 그저 피곤한 탓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요. 나중에 장(腸)절제 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으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어요. 하지만 가족과 다른 환우들을 생각하며 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 베체트 환우회(http://www.behcet.co.kr)부회장 정동국(50.여.서울 양천구 목동)씨. 그는 "별 것 아닌 병이라고 생각하고 방치했다가 실명(失命)에까지 이르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씨의 몸에 처음으로 이상이 느껴진 것은 첫 아이를 낳은 뒤였다. 입안이 헐기 시작하더니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장에까지 궤양이 침투해 그 후 20년 동안 구멍난 창자를 여섯 번이나 잘라내야 했다.

격심한 통증으로 진통제 없이는 단 며칠도 견디기 힘들었고, 언제 장 출혈이 있을지 몰라 불안에 떨며 보낸 세월이었다. 하지만 몇해 전 건강이 기적처럼 호전돼 정씨는 이제 누구보다도 열심히 동료 환우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정씨가 환우회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은 10년 전 의사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된 한 여자 환자 때문.

치료를 포기하려던 그를 정씨가 설득해 수술을 받게 했지만 그는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환자 모임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몇번이나 얘기했었어요. 그 몫까지 열심히 일할 생각입니다."

베체트 환우회가 생긴 것은 지난해 7월. 95명으로 시작한 회원은 이제 7백90여명으로 늘었다. 환우회에서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전화 상담(02-652-6636)을 하고 있다.

해마다 세미나를 개최하며 '실크 로드'라는 소식지도 발행한다. 국제 베체트 환자 대회에도 참가해 외국 환자들과 정보도 교환하고 있다.

난치병과 싸워가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환우들의 수기를 모아 조만간 책도 펴낼 예정이다.

신촌 세브란스 베체트병 클리닉의 방동식 교수는 "베체트는 스트레스가 큰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라며 "밤샘 작업을 많이 하는 등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입 안이 자주 헌다면 전문의를 찾아 보라"고 권했다.

◇ 베체트란 피부.장.눈.관절.비뇨 생식기 및 신경계 등의 여러 장기를 침범하는 만성적이고 반복적인 질환. 입이 헐고 피부에 반점이 생기거나 눈에 염증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병의 원인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에 1만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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