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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 가장 듣기싫은 말…"결혼 안하냐"보다 "회사 괜찮냐"

중앙일보

입력

서울 동작구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일호 씨는 올 추석 연휴에 ‘집콕’을 할 계획이다. 대신 울산시에 사시는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기로 했다. 집에서 머지않은 처가에도 추석 당일(10월 1일)에만 잠깐 들러 식사만 한 뒤 바로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세가 여전한데, 세 살 난 어린 아들과 함께 여러 친지를 만나는 것보단 그냥 집에서 머무는 게 더 안전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울산에서 올라오는 그의 부모님 역시, 하루만 머물고 다시 울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김 씨는 “이번 추석은 ‘최대한 간소하게’ 지내기로 했다”며 “남는 연휴 동안에는 가족들과 집에서 조용히 보내면서, 아이와 놀아주는 게 일단 계획의 전부”라고 했다.

올 추석을 앞두고 서울 중구 서울역 매표소에 세워진 추석 열차권 예매 안내판. 한국철도(코레일)에 따르면 올해 추석 열차 좌석은 전체의 23.5%인 47만여 석이 팔리는데 그쳤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뉴스1]

올 추석을 앞두고 서울 중구 서울역 매표소에 세워진 추석 열차권 예매 안내판. 한국철도(코레일)에 따르면 올해 추석 열차 좌석은 전체의 23.5%인 47만여 석이 팔리는데 그쳤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뉴스1]

내년 초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 이경주 씨도 올해 추석엔 집에서 머물 계획이다. 예년 같으면 예비 처가에 인사를 갔겠지만, 최대한 이동을 자제한단 목표다. 대신 처가엔 온라인으로 갈비 세트를 주문해뒀다. 이 씨는 “경기도 안 좋고, 코로나19 등을 우려한 탓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도 꺼려진다”며 “추석 연휴를 고려해서 양가 상견례도 미리 끝내둔 만큼, 연휴 중에는 조용히 집에서 쉬면서 지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업딥톡]35. 코로나시대 직장인 추석 보내기

추석 연휴 전후의 주말을 활용해 조용히 인사를 다녀오는 이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30대 직장인 조나현(여) 씨는 “연휴가 지난 그다음 주쯤 시댁이 있는 강원도 춘천에 다녀올까 생각 중”이라며 “시부모님도 사람들이 많은 때는 피해서 오길 권하셨다”고 전했다.

직장인 69.9% "연휴 중 집에 있을 것" 

코로나19가 직장인 ‘추석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평소에 자주 못 만난 친지들이 만나는 한가위는 적어도 올해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게 일반적이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 탓에 예년처럼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 중견 그룹인 유진그룹이 계열사 임직원 13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9.9%가 ”가족과 집에 머무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향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간다“는 응답은 전체의 25.7%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선 ‘귀성 혹은 여행 계획이 있다’는 응답이 68.4%, ‘집에 머물겠다’는 응답은 29.3%를 각각 기록했었다. 구인·구직 플랫폼인 사람인 조사(직장인 1354명 대상)에서도 "귀성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57.7%에 달했다.

직장인들 추석 어떻게 보낼까. 자료 유진그룹

직장인들 추석 어떻게 보낼까. 자료 유진그룹

집콕 바람에 호텔도 '썰렁'

많은 직장인이 추석 연휴 중 ‘집콕’을 선택하면서 호캉스로 호황을 누렸던 예년보다 호텔 예약률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호텔들은 대개 추석 연휴 중 50%대 전후의 예약률을 기록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에는 대부분 ‘만실’을 기록했었다.

그나마 그랜드 워커힐 서울이 70%대 예약률을, 롯데호텔 제주와 속초가 각각 70%~90%대 예약률을 기록 중이라고 한다. 익명을 원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불경기와 이동 자제 움직임 등이 겹치면서 최대 호황기 중 하나인 추석 연휴 예약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 괜찮냐' 듣기도 싫어"

상대적으로 조용한 추석이 될 것이란 예측의 배경에는 직장인들 대다수가 지난해보다 지갑이 얇아진 영향도 크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673개 기업을 조사해 20일 발표한 ‘추석 휴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중 “추석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답한 기업은 전체의 59.1%로 지난해(64.5%)보다 5.4%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적악화로 현재 무급휴직 중인 항공업계 직장인 김미선(43ㆍ가명) 씨는 “추석이 아니어도, 요즘 어디 가면 ‘회사 괜찮냐’는 소리를 듣는 일이 너무 괴롭다”며 “돈도 없고, 평소 잘 만나지도 않는 친척들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느니 그냥 집에서 쉴 생각”이라고 말했다.

집콕 연휴 중에도 골프장엔 인파 밀릴 듯  

연휴 중 대다수의 직장인이 ‘집콕’을 선택한다고는 하지만, 일부 여행지나 골프장 등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빌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서 운영 중인 서울 플라자 호텔은 연휴 기간 중 40~50%대 예약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반면, 강원도 속초 등 전국 유명 관광지에 위치한 리조트 중 일부는 이미 100%의 예약률을 기록 중이다.

수도권 소재 주요 골프장들 역시 20일 현재 연휴 기간 예약이 꽉 찬 상태다. 연휴 기간 중 두 번의 라운딩을 계획 중이라는 직장인 이성진(43)씨는 “추석 연휴가 5일이나 되는데, 연휴 내내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가족과 3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이틀은 지인들과 운동을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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