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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무협” 고전하는 ‘뮬란’…中 노린 리메이크의 득과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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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스타 유역비(류이페이)가 남장 여전사 뮬란/화준으로 변신한 디즈니 실사 영화 '뮬란'. 1998년 동명의 애니메이션에 바탕하고 있지만 원작과 별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중화권 스타 유역비(류이페이)가 남장 여전사 뮬란/화준으로 변신한 디즈니 실사 영화 '뮬란'. 1998년 동명의 애니메이션에 바탕하고 있지만 원작과 별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사흘간 10만9588명. 제작비 2억 달러(약 2327억원)의 대작 영화 ‘뮬란’(감독 니키 카로)의 지난 17일 국내 개봉 후 성적이다. 코로나19 등 극장 침체를 감안해도 참담한 수준이다. 심지어 토요일인 19일엔 3주 전 개봉한 할리우드 대작 ‘테넷’에 밀려 일일 흥행 2위로 떨어졌다. 개봉일 1420관으로 시작한 스크린 점유율(31.3%)도 ‘테넷’이나 ‘오! 문희’에도 뒤처지는 좌석 판매율(19일 5.4%)을 감안하면 다음 주엔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중국 시장 겨냥해 원작 대폭 바꿔 #"미녀 유역비의 무협 액션극 둔갑" #홍콩 발언 등 논란 속 흥행 부진 #디즈니 '흑인 인어' 실사 도전 계속

1000대1의 경쟁률을 뚫은 스타 유역비(류이페이)가 남장 여전사 뮬란/화준으로 변신한 이번 영화는 1998년작 애니메이션이 바탕이지만 원작과 별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쟁 장면 때문에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PG-13(13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등급을 받았다. 신비의 동물 캐릭터들(대표적으로 용 무슈)이 빠지고 ‘리플렉션’ 등 뮤지컬풍 명곡들은 오케스트라 삽입음악으로 대체되는 등 전체적으로 무게감을 한층 올렸다. 여기에 비장한 ‘충‧용‧진‧효’ 사상 강조까지 더해져 전체적으로 가족영화라기보다 무협 여성 성장물로 보인다. 김광혁 문화해설가는 “유역비의 검술 액션 등 볼거리로 노린 것은 많지만 아시아인들이 익숙한 중국‧홍콩 무협영화 눈높이에 못 미치는, 할리우드가 이런 것도 만들 줄 안다고 과시하는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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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영화 되면서 ‘역사 고증’ 문제제기

무엇보다 실사 영화가 되면서 애니 원작에선 간과됐던 것들이 역사적 고증 등 문제로 떠올랐다. 예컨대 영화 초반 뮬란 가족 등이 사는 집단 원형주택 토루(土樓)는 명나라 이후 중국 남부에서 발전한 객가족의 전통가옥인데 시‧공간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연걸(리롄제)이 분한 황제와 황성의 모습도 애초 설화의 배경인 남북조 시대와 따로 논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계속 영어로 중국(China)을 얘기하는데, 극 중 충(忠)의 대상인 나라를 현재 중국과 일치하는듯 단순화한 건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결국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거드는 모양새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만화영화에선 전설로 넘길 부분도 실사영화가 되면 역사의 한 대목으로 따지게 된다. 매체 차이에서 오는 현실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화 '뮬란'은 전쟁 장면 때문에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로는 처음으로 북미에서 PG-13(13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등급을 받았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뮬란'은 전쟁 장면 때문에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로는 처음으로 북미에서 PG-13(13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등급을 받았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실사의 위험부담은 특히 주연배우 유역비(류이페이)의 발언 논란에다 영화 촬영지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커졌다. 북미 지역에서 지난 4일(현지시간) 스트리밍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첫 공개된 ‘뮬란’은 엔드크레딧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공안당국에 감사를 표한 게 반발을 불렀다. 지난해 유역비의 홍콩 경찰 옹호 발언 때 생겨난 해시태그 보이콧뮬란(#boycottmulan)이 다시 불붙었다. 지난 3월 월드프리미어 때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대서사극”(EXTRA TV) 등 찬사를 늘어놓았던 해외 매체들은 이후 작품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분위기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용산역 앞에서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 영화 '뮬란' 보이콧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7일 오후 서울 용산역 앞에서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 영화 '뮬란' 보이콧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아시아권은 더 냉랭하다. 홍콩인들이 영화 보이콧에 나서면서 오히려 자오웨이(조미) 주연의 2009년 영화 ‘뮬란:전사의 귀환’ 등 예전 작품들을 찾아보는 이들이 늘었다고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중국 박스오피스 성적 역시 첫 주 2320만 달러에 그쳐, 중국 관객을 고려해 키스신까지 삭제했던 제작진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친숙한 걸 놀랍게’ 디즈니의 리메이크 전략 

‘뮬란’의 부진은 지난해 ‘알라딘’과 ‘라이언 킹’이 동반 흥행하면서 한껏 고무된 디즈니의 애니 실사화에서 아픈 손가락이 될 전망이다. 버라이어티 등 외신들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디즈니의 실사 영화 프로젝트는 약 20건. 일단 내년엔 ‘101마리 달마시안’(1961)을 탈바꿈한 ‘크루엘라’가 개봉 예정이고 현재 ‘인어공주’ ‘피터팬과 웬디’ ‘백설공주’ 등이 촬영 중이거나 프리프러덕션 단계다. ‘정글북’과 ‘알라딘’은 실사영화의 후속편 형태도 선보인다.

1991년 애니메이션 원작에 기반해 2017년 개봉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디즈니의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991년 애니메이션 원작에 기반해 2017년 개봉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디즈니의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처럼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동안 매번 평균 이상의 성공을 보장해 왔기 때문. 디즈니 실사영화의 실질적 1호로 꼽히는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2억 달러 제작비로 전 세계 10억 달러 이상의 극장 흥행을 냈을 뿐 아니라 관련 상품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말레피센트’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등 동화를 혁신적으로 포장한 실사영화가 줄줄이 히트했다. 지난해 ‘라이언 킹’은 16억 달러를 벌어들여 1994년 원작(9억 달러)의 2배 가까운 흥행을 기록했다. 부모 세대가 어린 시절 즐겼던 이야기에 현대의 기술력을 접목해 자녀세대까지 끌어들이는 전략을 따른 덕분이다. “친숙한 뭔가를 팔려면 놀랍게 만들어라. 놀라운 뭔가를 팔려면 친숙하게 만들어라.” 세계적 히트작들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히트 메이커스』에서 저자 데릭 톰슨이 강조하는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2010년 이후 디즈니 실사 영화의 흥행 성적.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010년 이후 디즈니 실사 영화의 흥행 성적.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미·중 갈등 등 현실변수가 부담으로

문제는 실사화 대상이 넓어지면서 짊어지는 리스크도 커졌단 사실이다. ‘뮬란’이 겨냥한 중국은 디즈니가 인도와 더불어 주력하는 시장이지만 미‧중 관계 악화라는 대외변수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디즈니가 수십 년 구애 끝에 2016년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개장하고 이듬해 신장 자치구에서 ‘뮬란’ 로케이션을 할 때만 해도 이 같은 악재는 예상되지 않았다. 김광혁 문화해설가는 “디즈니는 내년에도 마블 히어로물로 중국 주인공을 내세운 ‘샹치 앤 더 레전드 오브 더 텐 링스’를 선보이는 등 중국 자본을 노리고 있지만 ‘뮬란’에서 보듯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형석 저널리스트는 “지금은 실사 ‘뮬란’으로 욕을 먹긴 해도 애초 아시아 여성주인공을 내세우며 신선함을 준 게 애니메이션 ‘뮬란’의 성공 비결이었다”면서  “디즈니는 구식 동화에 정치적 올바름을 보태면서 계속 혁신적으로 탈바꿈하는 저력이 있다”고 짚었다. 흑인가수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된 ‘인어공주’ 실사화는 그런 저력을 확인할 다음 작품으로 꼽힌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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