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길잡이 팔미도 등대, 첫 등대 사적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0.09.15 11:45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이끈 '인천 팔미도 등대'가 15일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됐다. [사진 문화재청]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이끈 '인천 팔미도 등대'가 15일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됐다. [사진 문화재청]

1950년 9월 15일 새벽, 인천 팔미도 등대 불빛을 따라 261척의 함정이 인천항에 집결했다. 전날 밤 미군과 한국군으로 구성된 6명의 특공대가 북한군으로부터 팔미도를 탈환해 등대에 불을 밝힌 덕분이다. 이렇게 인천에 상륙한 7만5000여 명의 한·미 해병대 및 유엔군은 서울까지 진격을 거듭해 9월 27일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 수도 서울을 수복했다.

1903년 점등, 국내 현존 가장 오래된 등대
인천상륙작전 70주년 기념일에 사적 지정

한국전쟁 전세를 바꿔놓은 인천상륙작전에서 길잡이 역할을 했던 ‘인천 팔미도 등대’가 15일 사적 제557호로 지정됐다. 전국에 있는 1300여기의 등대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이 된 것은 인천 팔미도 등대가 처음. 사적 지정일인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 70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이날 “1903년에 세워진 국내 현존 최고(最古)의 근대식 등대”로서 “6·25전쟁의 국면을 일시에 뒤바꾸는 데 기여한 역사적,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사적 지정 이유를 밝혔다.

일각에선 인천 팔미도 등대가 국내에 최초로 지어진 등대로 알고 있지만, 이번 문화재청 조사에선 이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1876년 강화도조약과 개항 이후 외국 선박의 출입이 늘었고 1883년 개항장(인천, 원산, 부산)에 관세, 선박운항, 항로관리, 항로표지 업무 등을 담당하는 해관(海關)이 설치됐다. 때문에 선박의 안전항로 확보와 해난사고 방지를 위한 근대식 항로표지로서 등대는 이 시기 전후해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기록에 따르면 팔미도 등대는 1902년 착공해 1903년 4월 완공하고 그해 6월 점등했다.

1904년 2월 8일 오후 4시 일본 해군 제3전대가 인천의 팔미도 앞바다에서 러시아의 소형 포함 ‘카레예츠호’를 어뢰로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이 시작됐다. 사진은 영국 주간지 ‘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904년 4월 2일자에 실린 러일전쟁 화보. [사진 명지대 LG연암문고]

1904년 2월 8일 오후 4시 일본 해군 제3전대가 인천의 팔미도 앞바다에서 러시아의 소형 포함 ‘카레예츠호’를 어뢰로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이 시작됐다. 사진은 영국 주간지 ‘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904년 4월 2일자에 실린 러일전쟁 화보. [사진 명지대 LG연암문고]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5.7 km 떨어진 팔미도는 지름 300m 정도의 섬과 작은 바위섬들이 연결된 형상인데, 마치 여덟 팔(八)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아 팔미도라 불렸다고 한다.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요충지로서 1904년 러일전쟁 제물포해전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이 팔미도 등대 건설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도 이 전쟁을 대비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의 장구연 사무관은 “건축미학이 독보적이라기보다 대한제국기 건조물로서 원형이 양호하게 보존된 데다 인천상륙작전 등 역사적, 상징적 가치가 높이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등대는 2002년 인천시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됐고 점등 100주년을 맞은 2003년 퇴역했다. 바로 옆에 세워진 팔미도 새 등대는 위성항법시스템까지 갖춘 첨단 등대다.

문화재청이 15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한 독립신문 상해판의 마지막 호인 198호.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15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한 독립신문 상해판의 마지막 호인 198호.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한 「독립신문 상해판」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1919년 8월 창간부터 1926년 11월 폐간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국한문으로 발행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로서 유물은 전체 198개 호 중 창간호와 마지막 호를 포함한 총 170개호로 구성돼 있다. 총 177개 호를 포함한 기존의 「독립신문 상해판」(국가등록문화재 제510호)에 빠진 5개 호(제177~180호, 제195호)가 들어있는 등의 가치가 평가됐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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