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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 20대 신용대출 20% 늘어, 연체율 상승 ‘빨간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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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호 05면

2030 주식 투자 열풍 

직장 생활 11년차인 심모(41)씨는 최근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4000만원을 빌렸다. SK바이오팜 등 공모주 청약 열기를 그저 지켜만 보던 심씨는 빌린 돈의 절반을 이달 초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 증거금으로 썼다. 남은 돈으론 다른 주식을 사기 위해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심씨는 “수익을 내는 게 쉽진 않겠지만 이자가 워낙 싸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8월 가계대출 한 달 새 11조 급증 #“담보 없어 부채의 질 악화 시그널” #DSR 규제 강화 등 옥죄기 나서 #서민 자금 등 두더지 잡기식 피해야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틀어막은 후 둔화세를 보이던 가계대출 증가폭이 다시 커지고 있다. 심씨와 같은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가 이어지고 급등한 전셋값을 메우기 위한 대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생활자금 대출까지 늘어난 영향이다. 특히 신용대출이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에 따른 대출 규제로 주담대가 막히면서 신용대출이 ‘우회로’로 떠오른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은 7월보다 11조7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코로나19 확산 영향을 받기 시작한 지난 3월(9조6000억원) 증가폭을 뛰어넘었다. 주담대와 기타 대출이 모두 증가했는데, 특히 기타 대출 증가폭이 두드러진다.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 대출 등을 포함하는 은행의 가계 기타 대출은 지난달 전월 대비 6조1000억원 증가했다. 직전 최대 증가폭인 2018년 10월(4조2000억원) 규모를 크게 웃돌며 사상 최대 증가폭 기록을 갈아치웠다.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대출은 담보 없이 나가는 대출이어서 악성 가계부채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더욱이 올 들어 유독 20대의 신용대출이 크게 늘어 리스크를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5대 은행의 20대 신용대출은 1월 5조9567억원에서 5월 6조9266억원으로 16.2% 증가했다. 전체 신용대출이 급증한 6월에는 국민은행을 제외하고도 7조1436억원으로 1월과 비교해 19.9%로 20%에 육박하는 증가세를 기록했다. 30대(10.2%), 40대(11.4%), 50대(3.17%)와 비교하면 증가폭이 압도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20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령층에서 신용대출이 늘어났다는 것은 더는 맡길 담보가 없다는 것으로 가계부채의 질이 악화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이라고 우려했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금융협회(IIF)가 4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올해 1분기 기준 97.9%로 조사 대상국 중 6위로 집계됐다. 가계대출이 감내 가능한 한계점에 거의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가계대출 연체율은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말 주담대 연체율은 0.2%로 전달과 같았지만 신용대출 연체율은 0.48%로 소폭 올랐다.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163.1%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7년 1분기 이후 최고치다. 노산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산보다 부채가 커져 신용위험에 노출될 경우 한계가구의 증가는 불가피하다”며 “사회안전망 피해는 물론 금융사 부실화까지 초래해 금융 안정성까지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신용대출 옥죄기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14일 주요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과 화상회의를 열고 신용대출 증가 속도를 늦출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은 우대금리를 하향 조정해 전체 신용대출 금리 수준을 높이고, 최고 200%에 달하던 일부 전문직의 연 소득 대비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앞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에 대한 실태 점검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신용대출까지 옥죄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장은 고신용·고소득자의 신용대출이 줄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결국 서민·중산층의 생활자금 쪽까지 엄격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민의 ‘생활자금’용 신용대출까지 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DSR도 마찬가지다. DSR은 주택·신용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에서 연간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연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금융당국은 실태점검을 결과에 따라 DSR 비율을 더 낮추거나 규제 적용 대상을 넓히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DSR 규제를 강화하면 소득이 적은 계층은 대출을 받기 더 힘들어진다. 금융권에선 대출금리가 높은 카드사 카드론 등 제2금융권을 통한 대출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비(非)은행인 제2금융권의 대출 DSR 상한선은 올해까지 60%를 적용, 제1금융권 시중은행(40%)에 비해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급증한 신용대출을 관리할 필요는 있지만 대출 규제를 두더지 잡기 식이 아니라 좀 더 정교하게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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