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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스터디룸서 테마주 발굴…남의 말 믿다 ‘폭망’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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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호 04면

2030 주식 투자 열풍

“오늘 LG화학이 물적분할을 하기로 발표했는데 주식 가지고 있는 사람 있나요.”

신규 계좌 절반 이상 2030 ‘주린이’ #사모펀드 등 불신 커 직접 투자 #직구하듯 해외 주식도 적극 거래 #“욜로 즐기고 노후 자금도 마련” #최소 몇 년 내다보는 장기투자를

“물적분할과인적분할의 차이가 뭔가요. 주주한테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지난 16일 오후 8시. 서울 연남동의 한 스터디룸. 30대 초반 직장인 ‘주린이(주식+어린이)’ 11명이 신문 경제면을 놓고 스터디를 하고 있다. 주식 투자의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서다. 이날 참석자는 30대 초중반 여성 8명, 남성 3명이었다. 이들은  주식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다. 3년째 모임을 운영하는 직장인 김승연(43)씨는 스터디 참가신청 마감 속도를 보며 최근 주식 열풍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씨는 “불과 지난해만 해도 마감되는 데 최소 5일 정도 걸렸는데 코로나19 확산 후부턴 당일 마감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저금리 시대가 장기화에 접어들면서 부동산·주식 투자 열풍이 거세다. 그중 2030세대는 주식 투자에 관심을 쏟고 있다. 주식활동계좌의 절반 이상이 20~30대 것이다. 특히 이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각종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함께 모여 투자 공부를 하고 신종 테마주를 발굴한다. 2006년부터 주식에 투자한 직장인 허태규(36)씨는 올해 2월부터 서울 역삼동에서 ‘주린이지만 괜찮아’ 소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회비는 1만~2만원 수준으로 모두 스터디룸 대관료에 사용된다. 공부 주제도 다양하다. 차트 보는 법, 재무제표 분석, 외신 보기, 증권사 리포트 해석 등 마치 입시과목 나누듯 세분화됐다. 허씨는 “과거엔 전문가들이 ‘이거 사세요, 저거 사세요’ 하면 개미들이 쫓아가는 경향이 컸다면 지금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공부해 개척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학업에서 손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2030세대 특성이 주식투자에 그대로 반영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평균 투자 금액은 몇 백만원 수준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공격적 활동에 비해 2030세대가 투자하는 금액은 아직 많지 않다. 평균 적게는 몇 백만원에서 많아야 3000만원 안팎이다. 그런 만큼 대형 우량주보단 저평가·테마주를 집중 공략하는 게 특징이다. 제조업 기반의 대형주 대신 자율주행 등 4차산업혁명이나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종목이 집중 공략 대상이다. 해외 주식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다. 2030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해외 기업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다. 아이폰으로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구글로 테슬라 자동차를 검색한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덕에 물리적 장벽도 사실상 사라졌다. 해외 주식을 마치 ‘직구(해외 사이트에 직접 주문해 물건을 사는 것)’ 하듯이 거래한다.

국내 투자자들은 테슬라(35억달러어치 보유), 애플(20억달러), 아마존(17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11억달러) 등 미국 기술주를 선호한다. 특히 올해만 420% 상승한 테슬라는 최근 한 달 동안만 8억달러어치를 사들였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해외 종목은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암호화폐 투자하듯이 요행을 바라는 면도 보이지만 한편으론 국내 종목과 달리 10~20년 후 가치를 확신하고 애플이나 테슬라를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왜 이들은 직접 투자에 나선 것일까. 불과 3~4년 전만 해도 한국사회에선 2030세대 중심으로 ‘헬조선’이란 자조적 분위기가 컸다. 많은 젊은이가 ‘노오력’해도 변하는 게 없는 한국이 지옥에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본전’이란 말까지 떠돌 정도였다. 이들이 이제는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50만원으로 시작해 현재 500만원가량 주식에 넣어두고 있다는 대학생 신민석(22·외대)씨는 “공부하고 노력하는 만큼 수익을 이룰 수 있는 주식은 내 힘으로 내 자산의 가치를 키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모임 운영자 허씨는 “오히려 욜로(YOLO)에 대한 욕구가 더욱 커지면서 여생을 풍족하게 살고 싶어 여유자금 벌기에 더욱 매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 투자기관에 대한 불신도 크다. 최근 몇 년 사이 잇달아 터진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옵티머스사태), 라임자산운 펀드 환매 중단 사태(라임사태) 등을 겪으면서 펀드매니저가 수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있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 “사모펀드의 리스크들이 개미 투자자들에게 강하기 각인됐다”며 “불안감을 안고 투자할 바엔 스스로 하나씩 알아가며 투자하겠다는 게 동학개미운동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빚내지 말고 여윳돈으로 해야”

해외주식에 눈을 돌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0년간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 머무는 동안 미국의 S&P500지수는 170% 상승했다. 최근 투자동아리에서 추천을 받아 테슬라 주식을 샀다는 대학생 이지현(23)씨는 “미국은 기업이 성과를 거두면 배당을 주고, 주가도 오르는데 한국에서는 경영진이나 기관투자가들의 이익만 챙기는 것 같아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튜브도 2030 개미를 견인한다. 주식 투자를 고민하며 대형서점 재태크 코너를 찾던 과거와는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주식 거래에 나섰다가 이른바 ‘폭망(폭삭 망한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프로그래머인 이호진(32)씨는 주변 말만 듣고 투자했던 회사가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이씨는 “무작정 남의 말만 믿고 주식을 사면 안 된다는 교훈을 300만원 주고 얻은 셈”이라고 토로했다. 단타 거래가 많은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한번 잘못 물리면 이씨처럼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최근엔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까지 끌어다가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단순히 투자 광풍이라기보다는 선진국형 금융구조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장기적으로는 나쁘진 않다”며 “다만 기본적으로 일상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여윳돈으로 해야 하는데 지금 빚내서 들어오고, 온종일 시세만 들여다보는 것은 사실상 투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주식시장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는 저점 대비 64% 올랐다. 주요 20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상승폭이 크다. 황성훈 미래에셋대우 서초투자자산관리센터 차장은 “예전과는 달리 요즘 젊은층은 재무제표 등을 공부하고 들어와 상승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며 “문제는 언젠가 상승세가 꺾이고 급격한 변동이 올 경우 손절매를 할 수 있느냐, 부채와 자산을 잘 관리할 수 있느냐는 부분인데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주식이 안정적인 재테크로 발돋움하려면 최소 몇 년을 내다보는 투자자의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자 예탁금 56조, 반년 새 곱절

증권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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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국내 투자자 예탁금은 60조5269억원으로 금융투자협회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8년 6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후 보름 사이 56조4043억원(지난 14일 기준)으로 다소 줄기는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전보다 급증했다. 지난 2월 말엔 약 31조원에 불과했다. 반년 사이 거의 배로 늘어난 셈이다. 투자자 예탁금은 주식 거래를 위해 증권 계좌에 입금해놓은 대기 자금이다. 이게 많을수록 증시 팽창세가 뚜렷한 것으로 해석된다.

주식 투자를 위한 증권사 대출(신용융자)도 급증하면서 이상 신호를 보이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15일 신용융자 한도 소진으로 16일부터 신규 신용융자 매수를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7월 이후 올 들어 두 번째 중단이다. 이미 이달 들어 한국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도 같은 이유로 신용융자 신규 약정을 일시 중단했다. 금투협에 따르면 신용융자와 예탁증권담보대출 등의 합계인 신용공여 잔고는 지난 11일 기준 17조3379억원이었다. 통계를 낸 이래로 최대치였다. 개인이 빚을 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가 늘어난 영향이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나스닥 등 해외 증시 활황에 투자자들은 해외로도 발걸음을 적극 옮기고 있다. 올 1~7월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액은 누적 306억2000만 달러(약 37조원)로, 2007년(322억5000만 달러) 이후 역대 2위 규모였다. 이 과정에서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인 ‘동학개미’에 빗대 ‘서학개미’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코로나19 대유행에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수밖에 없어 개인 입장에선 주식 투자의 매력이 그만큼 부각됐다”며 “국내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이 아직 선진국보다 작은 만큼, 앞으로 돈이 더 몰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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