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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렌트걸’과 다니는 파타야의 나홀로 외국 노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28)

28일 차, 코란 산호섬 여행

코란 산호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 탄 승객들. [사진 조남대]

코란 산호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 탄 승객들. [사진 조남대]

오늘은 산호섬으로 가기로 한 날이다. 호텔 인근 식당으로 가 누들과 오므라이스로 아침을 먹었다. 누들은 이전에 먹어본 다른 누들보다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코란 산호섬으로 가기 위해 송태우를 타고 선착장으로 갔다. 1인당 150밧을 주고 표를 구입해 배를 탔다.

산호섬은 파타야에서 7.5㎞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다. 배는 쾌속선이 아니라 천천히 달린다. 시내에서는 주로 노인들이 보였으나 배에는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멋쟁이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보이는 등 시내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배를 타고 조금 지나자 앞에 커다란 섬이 보인다. 쾌속선으로 가면 15분 만에 갈 거리인데 40분이나 걸린다고 한다. 바다 중간쯤 오자 섬과 파타야가 다 보인다.

1월 산호섬에서 해수욕을

코란 섬에 도착하자 짙푸른 바다가 어서 오라고 나를 부르는 것 같다. 해변의 모래가 눈부실 정도로 깨끗하다. 흰 모래사장과 야자나무가 남북으로 4㎞ 정도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넓은 해변에 파라솔과 누울 수 있는 의자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관광객들은 해수욕을 하거나, 파라솔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가게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환담한다. 우리도 식탁 하나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난 다음 맥주를 마시며 주변을 구경하기도 하고 바다에 들어가 해수욕을 즐겼다.

멋진 몸매의 여인들은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오간다. 한국의 여성은 피부가 탈까 봐 온몸을 감싸는데 백인 여자는 아슬아슬하게 가린 비키니만 입고 따가운 태양이 비치는 해변에 누워 햇볕을 마음껏 받아들인다. 나도 바다로 나가 물 위에 누워 본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이라 가만히 있어도 뜬다. 바다에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여유롭고 행복하다. 해변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세계 각국의 젊은 여성들이 몸매를 뽐내며 눈앞에서 오간다.

파타야로 돌아오는 길

파타야 앞에 있는 코란 섬의 아름다운 해변 풍경.

파타야 앞에 있는 코란 섬의 아름다운 해변 풍경.

유명한 휴양도시인 파타야에 와서 관광하다 물 맑은 산호섬인 코란 섬까지 들어와 이 겨울에 해수욕을 하다니 꿈만 같다. 오후 3시가 되자 일부는 짐을 챙긴다. 선착장에는 관광객들을 싣고 갈 배가 정착해 있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은 어느새 솜털 구름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4시 배를 타기 위해 짐을 정리했다. 마지막 나가는 5시 배를 타면 너무 붐빌 것 같아 4시 배를 탔다. 들어올 때는 2층 선실에만 사람이 있었는데 나갈 때는 1~2층 가득하다. 파란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되돌아가니 후련했다. 햇볕이 반사된 바다에 바닷물이 일렁거리니 그에 따라 배도 흔들거린다. 수평선 저 멀리 작은 섬이 보인다. 바다 가운데에는 돛을 단 범선도 지나간다.

선착장을 출발해 섬 모퉁이를 돌아 나오자 파타야 해변의 고층빌딩들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눈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운 섬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좋은 추억을 가슴에 가득 품은 채 다시 파타야 항구로 돌아간다. 수영복을 입고 몇 시간 바다에서 놀았더니 피곤하다. 선창 위에 잠깐 누웠는데 잠이 들었다. 깜빡 졸았는데도 개운하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파타야가 벌써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아주 천천히 파타야 선착장으로 다가간다. 여기 있으니 서울이 영하의 날씨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파타야 해변에서 바라 본 일몰.

파타야 해변에서 바라 본 일몰.

선착장에 도착해 송태우를 타고 힐튼호텔 쪽으로 오는데 석양이 너무 아름다워 힐튼호텔 앞 해변에 내려서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을 감상했다. 환하게 온 세상을 밝게 비추던 태양도 바다로 들어가기가 못내 아쉬운지 붉은 빛을 발하며 최고로 부풀어 올랐다가 바닷속으로 푹 빠진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노년을 맞이한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양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한 후 아무리 붙잡아도 조급히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의 노년도 무엇이 그리 급한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쌀국수보다 빵을 더 선호하는 양 팀장과 함께 햄버거가 먹고 싶어 맥도날드에 찾아갔더니 중간 정도의 크기가 250밧이나 한다. 동남아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엄청 비싸게 느껴진다. 쌀국수 다섯 그릇 가격이다. 햄버거 하나를 구입한 후 포장해 아침을 맛있게 먹은 쌀국수집으로 갔다.

쌀국수를 먹으려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가게 전깃불이 나갔다. 그래도 손님들은 아무 소리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한참을 지나자 종업원이 양초 몇 개를 가지고 와서 켜 준다. 그래도 먹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없을 뿐 아니라 어두컴컴한 가게로 손님들이 꾸역꾸역 들어온다. 다른 가게는 멀쩡한데 우리 식당만 전깃불이 나간 것이다. 선풍기도 돌아가다 멈춰 더위가 느껴졌다. 항의하거나 왜 전깃불이 나갔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음식도 대단히 늦게 나온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몇 번이나 재촉했을 것 같은데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0분 정도 기다리다 전기가 들어오자 손님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동행인이 여행에 끼치는 영향

파타야 해변 야자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과 해변가 풍경.

파타야 해변 야자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과 해변가 풍경.

우리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던 노인은 우리가 말을 걸자 우리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호주에서 휴양 차 왔는데 75세라고 한다. 호주가 지금은 너무 더운 계절이라 이쪽으로 피서를 왔단다. 그러면서 1년에 6개월 정도는 기후가 좋은 곳에 가서 지낸다고 한다. 친구하고도 다녀봤지만 6개월 정도 장기간 다니다 보면 싸우기 때문에 혼자 다닌단다. 한국 이태원에도 가 봤다면서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물가가 호주와 같은 수준이라 비싸다고 한다. 여기에서 지내는 이유는 기온도 맘에 들지만, 물가가 싸기 때문이란다. 식사 한 끼에 1500원 정도다. 날씨에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건 좋은데, 혼자는 외로울 것 같다. 부부가 함께 다닌다면 더 좋을 텐데. 외국 노인들은 대부분 남자 혼자 와서 필요하면 ‘렌트걸’을 동반하고 다닌다.

나는 나이 들어 경희와 함께 다니는 것이 제일 편하고 좋다. 앞으로도 함께 다닐 수 있도록 내가 많이 노력해야겠다. 내가 고집이 있어 경희가 항상 양보하지만 그래도 엉뚱한 고집이 아니고 합리적인 주장이라 잘 받아들이고, 큰 불만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호주에서 온 그 노인처럼 오래 다니다 보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갈등과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나이 많은 남자 두 명이 다닌다면 더 그럴 것이다. 우리도 그동안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그때그때 협의를 통해 잘 해결해 왔다. 비록 미얀마 관광할 때는 의견이 달라 5일 정도 두 팀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다녔지만. 또 부부가 나이가 들어 같이 여행을 다니려면 건강해야 하고, 서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의견이 다르더라도 화내지 말고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시원한 맥주 한 병의 행복

식사 후 과일과 맥주를 사서 우리 숙소 앞 테이블에 앉아 먹으며 내일 일정을 협의하는 한편 이번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날씨가 더우니까 맥주가 많이 당기는 모양이다. 여기서 맥주는 카페나 바에서 한 병 마시는데 60밧이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바에서 작은 맥주 한 병 시켜 놓고 길거리를 바라보고 앉아 세월아 네월아 하며 마신다. 안주도 없다. 손으로 병을 잡으면 맥주가 식으니까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맥주병을 넣고 마실 수 있도록 홀드를 만들어 놓았다. 맥주병을 들고 한 모금 마시고 놓았다 또 한 모금 마시고 하며 시간을 보낸다.

배를 타고 산호섬에 가서 해수욕을 한데다 맥주를 마시니까 졸음이 몰려온다. 양 팀장과 광표 씨는 마사지받으러 간다고 한다. 우리 내외는 집에서 쉬기로 했다.두 사람은 마사지를 받을 겸 밤공기를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밤 여행 잘 마치고 오기를….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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