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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백신 조기 공급’ vs 바이든 ‘무료 제공’ 대선 맞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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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20분에 걸쳐 선거 유세를 방불케 하는 ‘연설’을 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신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될 것이며, 이르면 10월 안에 이뤄질 수도 있다”며 “특별한 날 이전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날을 말하는지 여러분은 알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가 말한 ‘특별한 날’은 11월 3일 대선일이다. 코로나 방역과 경제, 국제관계 등의 실패로 선거전에서 밀리는 상황을 백신의 조기 개발로 뒤집겠다는 희망을 강조한 셈이다.

트럼프, 정부 자금·행정 총동원 #백신 확보할 와프 스피드 작전 #바이든, 250억 달러 ‘무료백신’ #마스크 의무화로 차별화 노려

선거를 7주 정도 앞둔 미국에서 코로나19 방역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직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조기개발로 승기를 잡으려는 ‘백신의 정치화’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HHS)와 국방부 사이트, 그리고 CNN 보도 등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봄부터 ‘와프 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OWS)’이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해왔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코로나19 백신 3억 회 분량을 2021년 1월까지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 국민 3억3100만 명의 대부분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는 코로나19 백신·치료약·진단기기 등의 개발·생산·유통을 가속하는 코로나19 종합 대책의 일부다.

지난 8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지지자에 둘러싸인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지난 8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지지자에 둘러싸인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에 따라 미 연방정부는 지난 3월 30일 미국 민간 제약사인 존슨앤드존슨에 4억5600만 달러, 4월 16일엔 바이오업체 모더나에 4억8300만 달러, 5월 21일에는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에 12억 달러 등을 각각 지원하기로 했다고 CNN이 전했다. 자금뿐 아니라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식품의약처(FDA), 국립보건원(NIH),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 등 보건복지부 산하 각 기관 및 국방부가 나서 행정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임상시험이나 허가 과정은 물론 백신 생산시설 증설과 유통까지 지원하는 신속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예산과 행정 서비스를 총동원해 코로나19를 물리칠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 작전으로 백신을 고속으로 개발해 이르면 10월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백신의 정치화’를 추구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달 30일에는 의약품 허가권을 쥔 FDA가 3상 임상시험을 최종 완료하기 전에라도 백신 사용을 긴급 승인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정치적 의도가 빤한 백악관의 압력에 연방기관이 굽혔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7일 마스크 차림으로 펜실베이니아를 찾은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 [AFP=연합뉴스]

7일 마스크 차림으로 펜실베이니아를 찾은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 [AFP=연합뉴스]

절차의 엄밀한 준수라는 직업 정신과 살아있는 권력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을 제약사들은 정치적 득실이 아닌 과학과 윤리를 선택했다. 트럼프의 백악관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지난 8일 백신을 개발 중인 미국·유럽의 9개 제약·바이오 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국제적 규제와 승인 절차에서 최고의 과학적·윤리적 기준을 준수하겠다”고 공동으로 서약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백악관의 ‘백신 정치’를 거부하겠다는 선언이나 진배없다. 여기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선도해온 아스트라제네카·바이오엔테크·GSK·존슨앤드존슨·머크·모더나·노바백스·화이자(파이자)·사노피가 포함됐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대선 전에 백신이 나올 수 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는 공화당의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바이든 선거 캠페인 사이트(Baiden.com)에서 공개한 코로나19 7대 공약을 보면 민주당의 대선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7대 공약은 바이든이 당선하면 시행할 정책 목록과 트럼프의 방역 실패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고발장’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바이오 업체 모더나와 함께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AP=연합뉴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바이오 업체 모더나와 함께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AP=연합뉴스]

눈에 띄는 공약이 25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모든 국민에게 효과적이고 공정한 백신과 치료제를 무료로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안전과 효능에 대한 과학적 기준을 고쳐서라도 대선 전에 백신을 출시하게 하겠다는 트럼프에 맞서 바이든은 평등한 접근권 보장을 공약으로 내놓은 셈이다. 바이든 캠프는 여기에 더해 주지사들과 협력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혀 마스크와 거리 두기를 비롯한 기본 방역 수칙을 무시해온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추구한다.

트럼프의 지시로 단절했던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를 복원하고, 중단된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병원체 추적 프로그램(PREDICT)’을 복원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1번 공약부터 ‘트럼프의 코로나19 검사와 추적과 관련한 대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드라이브스루 검사소를 지금의 2배로 늘리고, 가정 검사와 즉석 검사를 포함한 차세대 검사법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선 코로나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이나 가치관 대결은 보이지 않고 온통 ‘방역 정치’와 ‘백신 정치’에 점령당하고 있다. 트럼프의 ‘막판 백신’과 바이든의 ‘무료 백신’의 한판 대결에서 누가 이기든 미국은 한동안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어 보인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