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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생·화] 투수에게 볼 4개가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SK 선수단이 9일 인천 키움전에서 4-13으로 패한 뒤 그라운드로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SK 선수단이 9일 인천 키움전에서 4-13으로 패한 뒤 그라운드로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투수가 홈런을 가장 많이 맞는 볼카운트는 3볼-1스트라이크다. 볼넷을 피하기 위해 스트라이크를 던지려다 한가운데로 몰리기 일쑤다. 제구력 좋기로 유명한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33)은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볼넷을 주느니 차라리 안타를 맞으라'는 얘기를 수십 번씩 들었다"고 했다. 투수에게 볼넷은 그 정도로 피하고 싶은 적이자 불안 요소다.

볼넷은 투수가 가장 비효율적으로 출루를 허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상대 타자에게 힘 한 번 쓰지 않고 걸어나갈 기회를 준다. 반면 투수가 속한 팀은 잃는 게 너무 많다. 볼넷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투수의 투구 수가 많아지고, 수비 시간도 늘어난다. 결국 야수들의 타격 집중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야구에 볼넷과 비슷한 개념이 처음 생긴 건 1863년이다. '볼로 판정된 공이 3개를 넘기면 타자를 1루로 보낸다'는 룰이 도입됐다. 투수가 일부러 계속 볼을 던져 타자를 자극하는 신경전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볼 3개'가 투수에게 너무 가혹한 제한이라는 불만이 잇따랐다. 1871년부터 그 숫자를 9개로 대폭 늘렸다.

이번엔 경기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1880년 8개→1882년 7개→1884년 6개→1886년 7개→1887년 5개 순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겪었다. 1889년 볼 수가 4개로 줄어든 뒤에야 비로소 새 룰이 정착됐다. 이후 14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최적의 기준이 '볼넷'인 셈이다. 한 타자에게 볼 4개 이상을 던졌다면, 더이상 정면승부 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

9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전광판. 키움 타선이 얻어낸 볼넷 숫자에 '16'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뉴스1]

9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전광판. 키움 타선이 얻어낸 볼넷 숫자에 '16'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뉴스1]

9일 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투수들은 타자와 싸울 권리를 여러 차례 스스로 반납했다. 인천 홈 경기에서 키움 히어로즈 타선에 볼넷 16개를 내줬다. KBO리그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전까지는 14개가 가장 많았다. 한화 이글스가 2008년 9월 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볼넷 14개를 허용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 경기는 연장 18회까지 진행됐다는 거다. SK는 그 절반인 정규이닝(9이닝) 동안 더 처참한 기록을 남겼다. 12년간 남아 있던 불명예 기록을 끝내 갈아치웠다.

창단 이래 최악의 하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는 볼넷 16개와 함께 11연패를 기록했다. 창단 시즌인 2000년 7월 이후 20년 만에 팀 역대 최다 연패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루 전(8일) 15점을 뽑고도 16점을 내줘 역전패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다. 최하위로 추락할 위기까지 닥쳐 설상가상이다.

SK는 지난해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다. 재작년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강팀이었다. 그런데 한 시즌 새 불가사의할 정도로 급격히 무너졌다. 팀 전체가 무기력한 상실감에 젖어있는 분위기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SK가 참담했던 '16볼넷'의 그림자를 향후 어떤 동력으로 삼느냐다. SK 마운드, 아니 SK 선수단 전체가 '강팀의 자격'을 되찾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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