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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두자 신용대출' ...8월 가계대출 증가규모 신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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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가계가 8월 한 달 동안 은행에서 끌어다 쓴 대출이 12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2004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액수다. 주택담보대출도 늘었지만, 신용대출이 유례없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택자금·생활자금 수요와 주식투자자 증가 등이 맞물린 결과다. 제2금융권을 포함해 금융권 전체로는 8월 한 달 동안 가계대출이 14조원 증가했다.

서울시내 한 은행에 걸린 대출광고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뉴스1

서울시내 한 은행에 걸린 대출광고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뉴스1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20년 8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948조2000억원이었다. 한 달 새 11조7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월별 증가 규모로 역대 최대치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2~3월 두 달 연속 9조원대 증가세를 보였던 가계대출은 4~5월 안정됐다가 6월부터 증가 폭이 다시 커졌다. 그러다 8월엔 기록을 세웠다.

세부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지난달보다 2조1000억원 증가했다. 아파트 거래와 대출 실행 사이엔 대략 1~2개월의 시차가 발생하는데 6~7월 아파트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8월 주택담보대출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세자금대출도 전월보다 7000억원가량 늘었다. 윤옥자 한은 금융시장국 과장은 “전세 거래가 늘었고, 전셋값이 많이 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며 “주택도시기금(HUG)의 서민정책상품인 버팀목 전세대출 일부를 기금이 아닌 은행 재원으로 분류한 영향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월별 증가 규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가계대출 월별 증가 규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8월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한 건 무엇보다 기타대출이었다. 한 달 동안 무려 5조7000억원이나 늘었다. 역시 역대 최대규모다. 기타대출은 대부분 신용대출이다. 지난 4월 코로나19 확산과 소비 둔화에 따라 이례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기타대출은 5월부터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윤 과장은 “부족한 주택 자금을 신용대출로 메우려는 수요가 있었다”며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인이 많아진 것, 최근의 공모주 청약 열풍 등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은 기타대출 증가 규모가 추석 상여금이 지급되는 9월엔 소폭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당분간 신용대출 증가세가 유지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신용대출은 대출을 하는 은행에서도 정확한 사용 목적을 알기 어렵다. 대출 실행 때 기재는 하지만 실제 어디에 쓰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대출은 1000억 감소 중소기업은 6조원 증가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신용대출까지 조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미리 받아두자는 생각을 많이 하는 듯하다”며 “워낙 대출금리가 낮아 큰 부담이 없는 것도 대출 증가 요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8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1.99~2.97%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약 1%포인트가량 낮아졌다.

기업대출은 5조9000억원 증가했다. 3~5월 폭발적 증가 흐름은 일단 진정된 거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규모별로 코로나19의 충격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은행대출은 8월에 1000억원가량 줄어들었지만, 중소기업은 6조1000억원이나 늘었다. 대기업은 운전 자금 및 유동성 확보 수요가 줄었지만, 중소기업은 대출 수요가 꾸준하고 정책금융기관 등의 금융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6조1000억원 가운데 2조7000억원은 개인사업자 대출이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금 순환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가 여전히 많다는 의미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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