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람사전

둥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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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철 카피라이터

정철 카피라이터

지붕이 없는 집. 새는 아이들에게 비바람 피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비바람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

『사람사전』은 ‘둥지’를 이렇게 풀었다. 나는 이곳에 매주 단어 하나를 초대한다.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초대한다. 오늘은 둥지다. 둥지를 초대한 건 자식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인데, 초대의 목적은 여느 날과 다르다. 자식을 조금 덜 귀하게 생각하자는 뜻으로 초대했다. 우리 머릿속에는 지독한 편견 하나가 살고 있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은 다르다고 믿는 편견. 편견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사전 9/9

사람사전 9/9

남의 자식은 공공장소를 뛰어다니며 주위에 불편을 주는 아이지만, 내 자식은 낯선 곳에 데려가도 주눅 들지 않는 아이다. 남의 자식은 착한 내 아이를 꾀어 수렁에 빠뜨리지만, 내 자식은 친구를 잘 못 만나 수렁에 빠진다. 남의 자식은 불량해서 어릴 때부터 술 담배를 하지만, 내 자식의 술 담배는 그 나이에 흔히 하는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다. 남의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건 공부를 못해서고, 내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건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다.

같은 자식인데 앞에 붙은 말이 ‘나’인가 ‘남’인가에 따라 편견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편견은 지붕이 된다. 한 인생이 비바람 뚫고 날아오르는 걸 방해하는 무거운 지붕이 된다. 보호가 과하면 그건 보호가 아니라 구속이다. 감금이다.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 그것은 내 자식을 조금 덜 사랑하는 것 아닐까. 세상 모든 자식을 조금 더 사랑하는 것 아닐까.

사랑한다면 덜 사랑하자.

정철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