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 무침 해 먹으려고 마트에 갔다가 오이 하나 사 들고 나왔네요. 상추 한 봉(120g) 4380원, 애호박 1개 4280원, 오이 2개 4050원, 시금치 한 단(250g) 6780원이 말이 되나요?”
장마·태풍에 과일·채소값 치솟아 #오이 2개 4050원, 무 1개 3700원 #“상추 1상자 9만원, 고기보다 비싸” #채소 빼고 김치 사라진 식당도 #추석차례상 작년보다 20% 더 들듯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주부 김모(34)씨는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는 채소·과일값에 혀를 내둘렀다. 장을 봐서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밀키트·샐러드를 주문하거나 외식을 하는 게 더 저렴할 정도라고 한다. 김씨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재료를 하나씩 사서 한 상을 차리려면 5만~7만원은 써야 한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역대 최장 장마와 폭염으로 채소·과일값이 평년과 비교해 이미 두 배나 오른 데다 잇따른 태풍으로 농산물 출하량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적어도 추석까지는 농산물 가격이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8일 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추석을 앞두고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차례상 품목을 조사한 결과, 올해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지난해보다 평균 20%가량 올랐다. 전통시장에서 차례상을 준비하려면 지난해보다 3만8400원(16.5%) 오른 27만500원, 대형 마트에선 8만270원(24.7%) 오른 40만4730원이 필요하다.
이동훈 한국물가정보 연구원은 “견과류 중 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입량이 줄고, 태풍으로 낙과율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급등했다”며 “긴 장마와 폭염으로 채소류의 가격 변동성도 커졌고, 닭고기·소고기·쌀도 지난해와 비교해 비싸다”고 설명했다.
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 거래된 배추 1포기의 소매 가격은 9738원으로, 1년 전(4890원)과 비교해 99% 올랐다. 한 달 전만 해도 6165원이었는데, 가격이 58% 뛰었다. 무 한 개는 1년 만에 1913원에서 3703원으로 94% 상승했다. 차례상에 오르는 홍로 사과 10개는 같은 기간 2만4921원에서 3만321원으로 22% 올랐다. 수박·쪽파·깻잎·방울토마토·양배추 가격도 1년 새 30~80%가량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미 지난달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8% 상승했다. 이는 2017년 1월(15.9%)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외식업체는 비상이다. 코로나19로 매출 감소를 가까스로 버텨왔는데 이제 식자재값이 올라 마진이 더 줄어들 위기다. 궁여지책으로 채소 반찬을 줄이거나 저렴한 채소로 대체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는 굴 소스 채소볶음에서 청경채가 빠지고 양배추만 가득해 손님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직장인 신모(36)씨는 “요새 코로나 때문에 외식업체가 어려운 건 알지만, 중식 채소볶음에서 청경채가 없는 건 너무하지 않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상암동의 한 샤부샤부 가게에서는 배추김치가 사라지고 무생채만 식탁에 올라왔다. 일부 족발집·횟집은 ‘당분간 상추를 제공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조모(48)씨는 “지금 상추가 한 상자에 9만원이나 해 돼지고기보다 더 비싸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채소 가격이 더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이다. 7일 얼갈이배추와 상추는 전 거래일(4일)과 비교해 도매가격이 각각 28.6% 24.3% 올랐다. 오이·애호박·꽈리고추 등도 하루 만에 도매가격이 25~35% 급등했다. aT 관계자는 “태풍 등 기상이변이 있는 경우 농수산물 경매가 과열돼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매가격 상승세는 1~2주의 시차를 두고 소매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마트는 채소 가격을 매일 바꾸지는 않기 때문에 도매가가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추후 가격 상승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