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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는 포퓰리스트…우익 지지 필요 땐 역사문제 꺼낼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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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호 02면

‘포스트 아베’ 전망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새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새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격적으로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7년 8개월에 걸친 아베의 장기 집권이 막을 내리고 있다. 한국과는 악연이 많았던 총리였다. 그런 만큼 후임 총리는 누가 될지, 그가 어떤 성향을 띨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자민당 내 다수 파벌의 지지 속에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될 게 거의 확실하다. 스가 관방장관은 함께 출사표를 던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 등과 오는 14일 자웅을 겨룰 예정이다.

소장파 나카지마 다케시 교수 #스가, 파벌 없어 국민 지지율에 신경 #한국과 ‘드라이한’ 외교 관계 예상 #기시다는 ‘블랙박스’ 같은 정치인 #아베, 일본 보수 정치 후퇴시켜 #중국 폭주할 때 한국과 분쟁 #마이너스 유산만 잔뜩 남겨

이 시점에서 일본의 정치 전문가들은 ‘포스트 아베’ 시대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그 시사점을 얻기 위해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장파 학자로 꼽히는 나카지마 다케시(中島岳志·45·사진) 도쿄공업대 교수를 지난 3일 만나 차기 총리 후보들의 정치 성향과 정국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아베와 달리 스가는 이데올로기 색이 옅어 얼마든지 다른 정책을 펼 수 있는 인물”이라며 “대중의 인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나카지마 다케시 교수

나카지마 다케시 교수

아베 총리의 퇴진은 예상했나.
“건강 문제가 불거지면서 레임덕이 급속히 진행될 경우 곧 퇴진할 것으로 예상은 했다. 아베가 후임을 지명하거나 임시 대행을 두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베 2차 정권 7년 8개월을 평가한다면.
“마이너스의 유산을 많이 남겼다. 2013년 특정비밀보호법 등을 통과시켰는데 이로 인해 이유를 밝히지 않고도 체포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자연히 정부에 비판적 의견을 내기를 꺼리게 됐다. 관료들이 알아서 손타쿠(忖度·위의 뜻을 헤아려 행동함)를 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언론은 정부에 날카롭게 질문하는 걸 꺼리게 됐고 NHK는 정부 홍보기관이 됐다. 측근 특혜 의혹인 모리토모 가케학원 문제에선 관료들이 알아서 자료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가 적은 비용으로 시민들을 지배할 수 있는 기반을 아베 내각이 만든 거다. 수십 년 뒤 역사가들은 아베 정권 때 생각보다 큰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아베가 일본의 보수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보수의 기본은 나를 포함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상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일단 상대편 의견을 듣고 그 안에서 접점을 찾는 게 보수 정치의 기본이다.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를 매우 훌륭한 보수 정치인으로 평가하는데 그는 "정치는 60점이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만 옳다고 100점을 따내려고 하는 건 공산주의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아베는 기존의 보수 정치를 전혀 계승하지 못했다. 야당 의견을 무시하고 각종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오히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가까웠다.”
아베의 외교는 어떻게 평가하나.
“동아시아 정세가 크게 바뀌고 있는데 미·일 동맹만 중시하느라 대응이 늦었다. 아베 정권 때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도 상당히 낮아졌다. 북한 문제는 아예 무대에 서지도 못하고 배제됐다. 특히 한국과는 싸울 때가 아니었다. 한국은 물론 동남아·인도 등과 연대해 중국의 폭주를 견제할 리더십을 일본이 발휘했어야 했다.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개선하지 못했고 미국에겐 끌려다니기만 했다.”
스가는 어떤 총리가 될까.
“스가는 아베와는 상당히 다르다. 스가는 ‘아베와 만났을 때 자신에겐 없는 국가관을 갖고 있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솔직히 고백한 바 있다. 스가에겐 강한 이데올로기나 국가관이 없다. 권위주의적인 점은 아베와 비슷하지만 뼛속까지 우파는 아니어서 얼마든지 다른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파워 게임, 즉 어떻게 권력을 장악해 강한 리더로 군림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 그런 만큼 대중의 욕망에 상당히 민감하다. 고속도로 통행료나 NHK 수신료 인하 등 대중이 좋아하는 요금 인하 정책에도 강하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문제도 주민 반발이 거세니까 디즈니랜드를 지어주겠다고 하는 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포퓰리스트다.”
스가 체제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바뀔까.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에 비춰볼 때 ‘드라이한’ 교섭이 될 수 있다. 역사 인식과 관련해 우파적 고집도 별로 없기 때문에 철저히 이해관계에 기반한 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야스쿠니 참배는 어떨 것으로 보나.
“스가는 기본적으로 흥미가 없을 거다. 역사 인식에 대한 강한 고집이 없다. 한국·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뜻이 있다면 역사 문제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익들의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싶으면 갈 수도 있다.”
기시다가 ‘포스트 아베’로 유력했는데 아베는 왜 후임으로 지명하지 않았을까.
“기시다는 뭘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은 ‘블랙박스’ 같은 정치인이다. 파워 게임에도 약하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한 당사자인데, 문재인 정부에서 백지화 위기에 놓였을 때 아무런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 당초 아베는 퇴임 후에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기시다를 후계로 생각했지만 결국 포기한 듯싶다.”
이시바는 아베와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시바는 역사 인식에 있어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신중한 입장이고 정치인들의 역사 왜곡에도 단호하다. 경제 정책에서도 최근 사회안전보장망을 강화하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가치문제뿐 아니라 부의 배분에서도 아베와 완전히 대척점에 섰다. 자민당이지만 야당의 입장과 비슷했다. 아베의 자민당에서 동지를 만들기 어려웠던 이유다.”
스가는 파벌에 속해 있지 않아 당내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총리가 되면 더욱 국민 지지율에 신경 쓸 것이다. 무파벌이었던 고이즈미 총리도 그랬다. 따라서 지지율이 떨어지면 스가 정권은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다.”
아베는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할까.
“아베 정권은 아베의 힘만으로 이끌어온 게 아니라 스가 등 주변 세력이 떠받쳐온 정권이었던 만큼 아베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외교 분야에선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할 거다. 하지만 차기 총리는 아베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을 외상에 앉힐 가능성이 크다.”
‘자민당 중의원의 40%가 아베 칠드런’이라고 분석한 게 화제가 됐다.
“1993년 아베가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만 해도 자민당의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하지만 아베가 총재였던 기간에 모두 세 번의 중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이때 당선된 젊은 의원들은 우파적 이데올로기 색이 강하고 자기 책임론을 기조로 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아베 칠드런, 아베 키즈들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이 5~10년 뒤엔 장관과 총리 후보가 될 거라는 점이다. 아베가 물러나더라도 아베 색깔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1년 뒤 차차기 총리는 누구를 주목하나.
“이시바는 이번엔 힘들어도 차차기는 가능성이 있다. 총무상을 지낸 노다 세이코와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딸인 오부치 유코도 주목할 만하다. 이젠 일본에서도 여성 총리가 나올 때가 됐다.”

일본 차기 총리 유력 스가, 지지율도 1위로 급상승

일본의 차기 총리 후보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1위로 올라섰다. 아사히신문은 4일 여론조사 결과 차기 총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스가 관방장관이 꼽혔다고 보도했다. 지난 2~3일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스가 장관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8%에 달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25%)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5%)이 뒤를 이었다. 지난 6월 여론조사에서는 이시바 전 간사장이 31%를 차지했고 스가 장관은 3%에 불과했다. 아베 신조 총리 사임 발표 후 한순간에 전세가 역전된 셈이다.

스가 장관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은 자민당 내 정치 역학 관계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당초 아베 총리는 기시다 정조회장을 차기 총리로 밀었지만 그의 인기가 좀처럼 오르지 않자 정치적 라이벌인 이시바 전 간사장에게 총리 자리가 넘어갈 것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그동안 자민당 총재 선거에 세 차례 도전했는데, 그중 두 차례는 아베 총리에게 패했다. 당내에서는 아베 총리에게 대립각을 세워온 거의 유일한 정적으로 꼽혔다. 그런 만큼 약체 후보를 내세웠다가 자칫 이시바 전 간사장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사태를 막기 위해 아베 총리가 자신의 복심인 스가 장관을 지원하기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스가 장관이 총리로 선출되더라도 실권을 휘두르기보다는 1년 뒤 차기 정권으로의 징검다리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만만찮다. 그가 공식적인 파벌을 보유하지 못한 무파벌 출신이란 점에서다. 이에 따라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2위 다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베 총리의 남은 임기 1년을 스가 장관이 채운 뒤엔 이시바 전 간사장과 또 다른 예비 주자들이 차차기 총리 자리를 노리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나카지마 다케시 교수 일본 정치인들의 저서와 인터뷰 등을 분석해 그들의 깊은 속내를 짚어내는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일본의 내일』(생각의힘)도 최근 한국 언론의 포스트 아베 정국 분석에 널리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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