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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으로 투자 손실 보전, 20조 ‘펀드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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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 펀드’가 출범한다.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뉴딜과 신재생에너지 같은 그린 뉴딜 관련 기업을 육성할 목적이다. 세제 혜택을 주는 ‘뉴딜 인프라펀드’도 만든다. 뉴딜 프로젝트를 뒷받침할 170조원 규모의 뉴딜 금융 조성 방안도 내놨다.

한국판 뉴딜 뒷받침할 자금 조성 #홍남기 “사실상 투자 원금 보장” #“자율적 운용 가능할지 의문” 지적 #은성수 “손실 35%까지 정부가 흡수” #뉴딜정책에 정부 100조 금융사 70조 #청와대 회의, 금융사 회장들 동원

정부가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참여형 뉴딜 펀드 조성 및 뉴딜 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충격을 받은 만큼 한국판 뉴딜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정부 계획의 연장선상이다.

핵심은 국민이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뉴딜 펀드다. 우선 정부(정책금융기관 포함)가 7조원, 민간이 13조원을 채운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할 모펀드를 만들고, 민간 자금을 매칭해 자펀드를 조성하는 형태다. 국민이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정책펀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취지는 공감하나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우선 투자 위험을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형태여서다. 펀드의 손실 가능성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실상 원금을 보장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자펀드 상황에 따라 평균 35%까지는 손실이 나도 정부가 먼저 흡수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만약 손실이 나면 원금 보장을 위해 국민의 혈세로 조성한 재정을 사용해야 한다. 이날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민자사업이 손실을 볼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자들의 원금과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배경이다.

업계 “사실상 정부가 찍은 회사에 투자” 관제 펀드 논란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화상을 통해 ‘뉴딜 정책펀드 세부 운용방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화상을 통해 ‘뉴딜 정책펀드 세부 운용방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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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리스크를 줄여서 모금액을 늘리겠다는 의도인데, 모객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 정부 지출이 확대돼 일부 투자자의 손실을 납세자 전체가 떠안는 구조”라고 말했다.

관제 펀드 논란도 불가피하다. 당장 투자 대상부터 명확하지 않다. 예시로 든 건 그린 스마트 스쿨, 수소충전소 구축 같은 민자사업, 디지털 사회간접자본(SOC) 안전관리시스템,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뉴딜 인프라 등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가 찍어 주는 회사에만 투자하라는 건데, 자율적인 운용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돈 될 만한 투자처라면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먼저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번 계획의 또 다른 한 축은 뉴딜 금융 지원 방안이다. 정부가 100조원, 금융회사가 70조원을 투입한다. 이날 문 대통령이 주재한 전략회의에는 10대 금융지주회사, KDB산업·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미래에셋그룹·삼성증권 등 민간 금융권의 수장들이 총출동했다. 사실상 동원령이란 비판이 나온다.

주요 금융지주회사는 회의에 앞서 이미 자체적인 자금 공급 계획을 내놨다. 신한금융은 향후 5년간 총 28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KB와 하나·우리금융은 약속이나 한 듯 10조원씩 신규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주요 투자 키워드는 디지털과 그린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디지털이야 그렇다 치지만 솔직히 신재생이나 농촌 태양광 같은 게 돈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단 70조원으로 출발하지만 사업 추진 속도에 따라 추가 청구서가 날아들 여지도 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파생결합펀드(DLF)와 사모펀드 사태 땐 판매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더니 필요할 땐 불러서 ‘돈 쓰라’고 하는 권위주의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세제 혜택이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뉴딜 펀드 말고도 배당소득에 대한 9% 과세를 해주는 공모형 리츠와 부동산 펀드 같은 다른 투자상품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애초에 금융소득종합과세 신고 대상이 아닌 일반투자자에게는 별다른 매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석·홍지유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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