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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유책주의 이혼 제도가 쿨한 이혼 막는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00)

유책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는데 사실인가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내게 소를 제기할 수 있죠? [사진 pikist]

유책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는데 사실인가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내게 소를 제기할 수 있죠? [사진 pikist]

변호사가 되어 가장 많이 들은 고민 중 하나가 ‘이혼을 해야 하나, 참고 계속 같이 살아야 하는가’ 입니다. 그리고 배우자로부터 이혼 소장을 받은 후에도 ‘이 기회에 이혼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지금까지 참고 살아왔는데 절대로 이혼을 할 수 없다고 해야 하는지’ 결론을 내리기 힘들어합니다. 그러면서 묻습니다. “유책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는데 사실인가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내게 소를 제기할 수 있죠?”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우리 이혼법제와는 별개로 이혼에 대한 답은 질문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혼을 원하는 원고에게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이혼이 항상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이혼 대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기로 결정을 했다면 그때부터는 그 결정이 정답입니다. 소송은 언제든지 취하해도 됩니다.” 죽어도 이혼을 할 수 없다는 피고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이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소송과정에서 바뀔 수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는 것이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혼할지 여부는 인생 전 기간에서 몇 안 되는 중요한 결정입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부모의 생각·체면보다 당사자의 의지가 중요하고, 복수심과 이기심으로 하는 결정이 아니라 이성과 합리적인 생각으로, 과거보다는 미래 지향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유책주의는 법률이 정한 이혼원인, 예를 들어 부정행위나 폭행 등이 있어야만 이혼이 가능합니다. [사진 pxhere]

유책주의는 법률이 정한 이혼원인, 예를 들어 부정행위나 폭행 등이 있어야만 이혼이 가능합니다. [사진 pxhere]

주지하다시피 재판상 이혼 사유와 이혼청구권자를 정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유책주의는 법률이 정한 이혼 원인, 예를 들어 부정행위나 폭행 등이 있어야만 이혼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혼 원인을 스스로 야기한 이른바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파탄주의는 혼인이 파탄 나면 그 원인을 불문하고 이혼이 가능합니다. 당사자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묻지 않기 때문에 유책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법은 유책주의만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혼인관계의 지속이 어려운 경우에도 이혼할 수 있도록 정했고, 그런 내용은 당시 의사록에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혼인 파탄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가 독립된 경제력이 없어 이혼하면 생존에 위협이 있는 경우 사회시스템은 이들을 보호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유책주의에 대한 비판이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되었습니다. 그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당사자의 협상 입지를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일방은 돈과 자녀에 관련된 사안에 대한 협상에서 더 약하거나 혹은 더 강한 위치를 점한다는 것입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불가능하다면 상대방의 이혼 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그런 경우 돈과 자녀에 대한 문제에서 유리하게 협상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불필요한 적대감과 고통을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이혼청구가 가능하려면 상대방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음을 주장하고 입증해야 합니다. 이혼을 반대하는 당사자는 상대방이 혼인 파탄에 더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고 입증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상대방을 가능한 나쁜 사람으로 부각되도록 조장하는 가운데 당사자들이 갖는 적대감과 고통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 전체적으로 전혀 바람직하지 않겠죠.

죽기 살기로 전쟁하듯 소송과정을 마치고 이혼을 하면 이혼 후에도 계속 갈등상태에 있게 되고, 그렇다면 무엇보다 자녀들이 더 고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진 pikist]

죽기 살기로 전쟁하듯 소송과정을 마치고 이혼을 하면 이혼 후에도 계속 갈등상태에 있게 되고, 그렇다면 무엇보다 자녀들이 더 고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진 pikist]

또 유책주의가 이혼의 증가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혼인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혼 소송을 통해 향후 혼인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혼인관계가 회복될 것인지 고민하기보다는 회복할 수 없는 혼인관계 파탄을 증명하기 위해서만 집중하기 때문에 비록 이혼 청구가 기각되더라도 혼인관계가 회복되기 어렵고 법률관계와 실생활이 다른 상태가 지속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죽기 살기로 전쟁하듯 소송과정을 마치고 이혼을 하면 이혼 후에도 계속 갈등상태에 있게 되고, 그렇다면 무엇보다 자녀들이 더 고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비단 미성년 자녀뿐만 아니라 성년 자녀도 부모의 고갈등 전쟁을 지켜보면서 많은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하겠죠.

우리 법제가 이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방향으로, 하지만 이혼의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혼인의 지속이 가능하다면 법원은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여야 하고, 혼인이 회복할 수 없는 파탄에 이르렀다면 당사자들이 가능한 감정 소모 없이 성숙하게 이혼에 이를 수 있도록, 즉 상대방에게 보복하는 심정이 아니라 서로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진행되길 희망합니다.

나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중 파탄주의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이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인 부부가 한 공간에서 도저히 같이 살기 힘들어도 미성년 자녀를 위해서는 혼인관계를 지속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 재산을 계획적으로 교묘하게 빼돌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서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에게 이혼하라고 명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생존을 박탈하는 불의입니다.

그런데 혼인하고 이혼할 때까지 매일 매 순간이 괴롭고 힘들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순간이 잠시나마 있었겠죠. 문제는 과도한 유책주의 이혼법제는 혼인 기간 전체를 암흑기로, 잊어버리고 싶은 시간으로 만들고 서로에 대해 나쁜 기억만 남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소송과정을 통해 분노와 갈등이 고양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벌써 100회라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변호사가 되고 우연히 시작한 이 글쓰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다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상처가 되었다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합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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