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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 예술 톡

뱅크시와 인명을 구하는 예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영국 출신 거리의 작가 뱅크시의 그림이 15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액자 뒤에 비밀리에 설치되었던 파쇄기에 의해 반 이상이 조각났던 사건은 전세계를 놀라게했다. 동시에 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는 더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가 이번에는 난민 구조 선박으로 연일 뉴스를 터트리고 있다. 뱅크시의 재정 지원으로 구입하여 지난 8월 15일 스페인의 보리아나 연안에서 비밀리에 항해를 시작한 루이즈 미셸 호(사진)는 독일 출신 피아 클램프 선장의 지휘로 이미 300여명에 이르는 난민을 구조했다. 난민에 관한 작품으로 거액의 돈을 번 뱅크시는 그 돈을 난민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술계에서 돈 좀 번 사람들이 요트를 사듯이 나도 배를 한 척 샀다. 지중해로 항해하기 위해” 라고 자신의 행보에 대해 언급을 하였고, 이후 언론들은 연일 루이즈 미셸 호의 난민 구조 결과를 보도하고 있다.

뱅크시의 이번 행보는 2015년 터키 해변에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동인 일란 쿠르디의 주검 사진이 세계적으로 보도된 이후 난민 문제에 대해 인도적인 차원에서 세계인의 연대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0902 문화예술톡

0902 문화예술톡

쿠르디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난민 문제는 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에서도 첨예한 입장 대립을 야기시키고 있다. 휴머니즘과 실리의 기로에 선 유럽인들의 가치관에 혼란을 안겨주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실업률은 치솟고 경제 성장률은 바닥을 치며 난민들에 대한 적대감은 점점 강해질 수밖에 없는 현 시국에서 뱅크시의 루이즈 미셸 호의 등장은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경찰의 눈을 피해 거리의 벽에 불법 벽화를 그리며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조롱하고 비판했던 익명의 예술가 뱅크시는 이 세계를 움직이는 자본과 권력의 그림자에 저항하기 위해 그 자본과 권력을 자신의 손에 넣었고, 그의 예술이 지닌 거대한 영향력으로 어두운 그늘의 약자들을 양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1000만을 넘어선 뱅크시가 창조하는 예술과 이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SNS를 통해 전세계 구석구석에 도달하고 있다. 그는 전쟁을 멈추고, 종교는 인간을 먼저 생각해야 하며, 정치인들에게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함께 해결 방법을 찾으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인간의 생명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함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는 행동한다. 그의 예술이 그에게 부여한 영향력은 난민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고 이기심이라는 바다에서 침수하고 있는 인류의 휴머니즘도 함께 구조한다.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