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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해용의 시시각각

‘중고나라’에 나온 일자리 상황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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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에디터

손해용 경제에디터

심심찮게 기삿거리를 제보하는 경제관료 A가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이 중고품 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에 매물로 올라왔었다”고 했을 때는 설마 했다. 장난이 섞이긴 했지만, 그의 말대로 올라오긴 했다. 지난해 영상가전 코너에 올라온 ‘청와대 일자리 현황판 팝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게시자는 2017년 6월에 산 80인치 크기의 일자리 상황판을 150만원에 판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그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제품의 원산지는 베네수엘라.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를 가진 제품”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청와대에서 이를 올릴 리 만무하다. 게시자는 포퓰리즘에 가까운 정책으로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잘못 가고 있다는 점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아직도 인터넷이나 술자리 등에서 회자되며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 지금의 일자리 상황과도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진짜’ 일자리 상황판은 소식이 감감하다. ‘일자리 양은 늘리고, 격차는 줄이고, 질은 높인다’면서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집무실에 설치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로 그것이다. 취임 초기를 빼면, 공식 논평이나 청와대 사진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정세균 국무총리조차 “저는 아직 본 적이 없다”(지난달 국회 대정부 질문)고 말할 정도다. 그럴 리 없지만, 중고나라에 매물로 내놓았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행방이 묘연한 이유는 간단하다. 일자리 사정이 최악을 달리고 있어서다. 현 정부가 ‘무능하고 나쁜 정부였다’고 깎아내린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비참한 수준이다. 괜히 일자리 상황판을 내세워 봤자 현 정부의 실패 사례만 부각될 뿐이다.

악화하는 일자리 상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악화하는 일자리 상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난달 실업자 수는 113만8000명, 실업률은 4%로 7월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9년 이후 최고치다. 취업자 수는 5개월 연속 감소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가장 길다. 일할 능력·의지는 있지만 노동시장 문제로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전년보다 5만5000명이나 늘어난 58만 명이나 되는 점도 절망적이다.

물론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경제 위축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만이 원인이었다면 적어도 2018·2019년의 일자리 형편이 나아졌어야 했다.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2017년부터 약 80조원에 달하는 일자리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말이다. 고용시장의 구조적 요인과 일자리 창출과는 배치되는 친노조·반기업 정책, 여기에 코로나19 충격이 더해졌다고 보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진단이다. 결국 현 정부는 공무원과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린 것 외에 양질의 지속적인 일자리 만들기에는 실패했다.

경제는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나빠진 고용도 다시 좋게 만들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정책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잘못된 부분에 대한 올바른 처방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려 정부에서는 취업자 감소 폭이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5월부터 고용 상황이 매달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홍남기 경제부총리)고 한다. ‘집값 상승세가 진정됐다’ ‘부동산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청와대 참모들의 ‘유체이탈’ 화법과 판박이다. 자기반성 없는 그릇된 진단에서 올바른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사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온다.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기업 고용을 끌어내면 된다. 노동유연성을 높이면 기업의 신규 채용문도 그만큼 넓어진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를 알면서 애써 외면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지 궁금하다. 결국 ‘보여주기식 쇼’로 끝난 일자리 상황판 설치, 그리고 최근 쏟아진 일련의 부동산 정책 등을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인 듯싶어 답답하기만 하다.

손해용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