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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된 정진웅은 승진, 감찰한 검사는 지방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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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한동훈 검사장의 유심(USIM) 카드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사상 초유의 ‘검사 육탄전’을 연출했던 정진웅(사법연수원 29기)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정 부장 아래 수사 주무였던 정광수(34기) 부부장도 영동지청장으로 영전했다. 이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정진웅 부장을 겨냥해 페이스북에 “몸을 날리는 투혼을 발휘한 보람이 있네요”라고 썼다.

법무부, 중간간부·평검사 인사 #문 대통령에 ‘달님’ 진혜원 영전 #야 “추미애 아들 수사청 보내 배려” #윤석열 총장 “신문 나오면 보겠다” #전달받은 인사 명단 읽다가 덮어

반면에 정진웅 부장 감찰 사건을 담당해 온 정진기(27기) 서울고검 감찰부장은 지방인 대구고검으로 전보됐다. 정진기 부장은 최근 정진웅 부장을 ‘독직 폭행’ 혐의 피의자로 전환해 본격 수사에 나선 상황이었다. 피의자는 승진하고 감찰 담당자는 지방으로 밀어내는 게 과연 공정한 인사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검찰 내부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윤석열 사단’ 대부분 한직으로 밀려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 후 두 번째 고검 검사급(차장·부장검사)과 평검사 등 중간간부급 이하 630명의 승진·전보 인사를 27일 단행(9월 3일자)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인권·민생 중심의 형사부·공판부 검사, 전문성이 있는 공인전문 검사 등을 우대하고 우수 여성검사를 핵심 보직에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법무부로부터 검찰 중간간부 인사안을 전달받은 뒤 내용을 살펴봤다. 그러나 윤 총장은 끝까지 인사안의 내용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신문에 (인사 내용이) 나오면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는 윤석열 검찰총장. 법무부는 이날 고검 검사급(차장·부장검사) 및 평검사 등 630명의 승진·전보 인사를 다음 달 3일자로 냈다. [연합뉴스]

같은 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는 윤석열 검찰총장. 법무부는 이날 고검 검사급(차장·부장검사) 및 평검사 등 630명의 승진·전보 인사를 다음 달 3일자로 냈다. [연합뉴스]

이번 인사 내용을 보면 추 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보좌하거나 친정부 성향을 드러내 온 검사들은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요직을 꿰찬 반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 또는 비판한 이력이 있거나 윤 총장과 가깝다고 분류된 검사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런 노골적 편가르기 인사는 처음 봤다” “이로써 윤석열 사단은 완전히 축출되고 추미애 사단이 구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사지휘권 발동, 검사 육탄전 등 갖가지 논란을 부른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마무리지을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는 김욱준(28기) 4차장이 수평 이동했다. 지식재산권 수사 전문 검사 출신인 그는 이성윤 중앙지검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동훈 검사장과 ‘육탄전’을 벌인 후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모습. [사진 서울중앙지검]

지난달 29일 한동훈 검사장과 ‘육탄전’을 벌인 후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모습. [사진 서울중앙지검]

2차장에는 윤 총장 장모의 사문서 위조 등 혐의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최성필(28기) 의정부지검 차장이 임명됐다. 추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입’ 역할을 해 온 구자현(29기) 법무부 대변인은 3차장에 발탁됐다. 검찰 내 요직인 ‘빅4’(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대검 공공수사부장)가 호남 출신 친장관 인사로 채워진 이달 초 검사장급 고위 간부 인사에 이어 이번 중간간부 인사도 흐름이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달님’으로 지칭하거나 김정숙 여사의 수해 복구 현장 사진과 함께 찬양 글을 페이스북에 계속 게시하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조롱하는 등 논란을 일으켰던 진혜원(34기)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는 서울동부지검 부부장 검사로 이동했다. 이에 한국여성변호사회로부터 검사로서 부적절한 행태에 대한 징계 요청까지 받았고, 공무원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검사를 상향 이동시킨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수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진 검사의 서울동부지검 발령에 대해 “징계 대신 ‘추미애 아들’ 수사청으로 ‘배려’성 전보된 친문 여검사”라고 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수사를 하거나 비판한 검사들은 사실상 좌천됐다. ‘삼성 합병 의혹’ 수사팀장이면서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꼽혔던 이복현(32기)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은 대전지검 형사3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가 곧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맡았던 김태은(31기) 공공수사2부장은 대구지검 형사1부장으로 이동한다. 둘 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중 마지막 남은 윤 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비판한 이영림 공보관도 좌천

“검찰을 다루는 저들 방식에 분개한다”며 법무부를 비판했던 이영림(30기) 서울남부지검 공보관은 대전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채널A 사건’을 두고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해 강요미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서울중앙지검 측의 입장에 반대 의견을 냈던 박영진 대검 형사1과장은 지방(울산지검 형사2부장)으로 발령났다.

윤 총장과 지근거리에서 호흡을 맞추거나 ‘측근’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중앙 무대에서 멀어졌다. 윤 총장의 ‘입’ 역할을 했던 권순정(29기) 대검 대변인은 전주지검 차장검사로 자리를 옮긴다. 윤 총장의 ‘눈과 귀’ 역할인 김영일(31기) 수사정보1담당관은 제주지검 형사1부장으로, 성상욱(32기) 수사정보2담당관은 고양지청 형사2부장으로 보임됐다.

김수민·강광우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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