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태풍 이름 퇴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열대성 저기압은 지역마다 달리 부른다.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건 ‘태풍’이다. 북태평양에서 발생한다. ‘허리케인’은 카리브해, ‘사이클론’은 인도양, ‘윌리윌리’는 남태평양에서 각각 발생한다. 이들을 통칭하는 영어명은 ‘tropical cyclone’이다. 이름으로는 사이클론이 대표선수다.

1526년 10월 4일 허리케인이 서인도제도를 덮쳤다. 그곳에 머물던 유럽인들은 마침 그날이 축일이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 이름을 따 허리케인을 불렀다. 1834년 9월 20일 도미니카공화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이름은 ‘파드레 루이즈’다. 이날 장례식이었던 루이즈 신부 이름에서 따왔다. 1887년 호주 퀸즐랜드 주는 영국인 클레멘트 랭기(1852~1922)를 주 정부 기상학자에 임명했다. 랭기는 지역에 피해를 주는 윌리윌리를 예보하고 이름을 붙였다. 처음에는 그리스 문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1906년 호주 정부는 연방기상청을 설립하고 랭기를 국장에 임명하려 했다. 정치권 반대로 무산됐다. 랭기는 그 후 임명에 반대한 정치인 이름을 윌리윌리에 붙였다.

미군은 태평양 전쟁(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풍에 이름을 붙였다. 사이판 기상관측소의 미 육군 항공대가 이 일을 맡았다. 담당자들은 아내 또는 여자친구 이름을 사용했다. 1945년 미 육군은 태풍에 붙일 이름 목록을 채택했는데, 모두 여성이름이었다. 1953년부터 허리케인에도 여성이름을 붙였다. 미국 여성 인권운동가 록시 볼턴(1926~2017)은 “피해를 주는 허리케인에 여성이름을 붙이는 건 성차별”이라고 주장했다. 1968년부터 반대 운동을 펼쳤다. 1979년 미국 해양대기청(NOA)은 볼턴 주장을 수용해 이후 남녀 이름을 번갈아 쓴다. 이런 추세는 전 세계로 퍼졌다. 아시아·태평양권은 2000년부터 태풍에 자연물 이름을 붙인다. 이름 후보는 태풍위원회 14개 회원국이 제출한다.

한 번 제출한 명칭을 계속 쓰는 건 아니다. 통과 지역에 큰 피해를 준 태풍 이름은 제출국 요청으로 퇴출당하기도 한다. 2003년 태풍 ‘매미’와 2005년 ‘나비’가 그런 경우다. 각각 ‘무지개’와 ‘독수리’로 바뀌었다. 올해 8호 태풍 ‘바비’가 북상하고 있다. 바비는 베트남 북부의 산맥 이름이다. 바비는 2015년 제3호 태풍 이름이기도 했다. 부디 조용히 지나가서 불명예 퇴출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혜수 스포츠팀장